[초동시각] 임대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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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용의 해, 갑진년 새해 첫날 아침. 휴일에도 여섯 시면 눈을 뜬다. 설을 맞아 찾은 본가, 여전히 잠을 자는 가족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산책을 나섰다. 생각보다 차갑지 않은 아침 공기가 고맙다고 느낄 무렵, 아파트 단지 바로 앞의 가게 문에 붙어 있는 흰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임대 구함’. 새 임대인을 구한다는 포스터였다.


4~5평 남짓한 과일가게 안쪽은 텅 비어 있었지만, 과일을 담던 플라스틱 박스들이 접힌 채 켜켜이 쌓여 상가 한 편에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임대 구함 쪽지가 붙은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분명 몇 주 전만 해도 멀쩡히 장사하고 있던 가게였다. 가족이 먹을 귤과 딸기, 사과를 자주 구매하던 그곳에 임대 딱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수많은 ‘임대 구함’ 매장을 보면서도 남의 일처럼 느껴졌던 자영업 불황이 피부에 와 닿듯이 느껴졌다.

비슷한 기억은 또 있다. 회사 앞, 자주 가던 토스트집이 지난달 문을 닫았던 것이다. 시중의 토스트 전문 체인점 같은 번듯한 매장을 차린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따끈한 토스트를 아침 일찍부터 맛볼 수 있던 곳이었다. 유난히 추운 날씨 때문에 며칠 동안 아침에 토스트를 사러 가지 않았더니 그새 임대 포스터가 붙었다.


아마 많은 자영업자에게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추운 해였을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소매판매액지수가 20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음식점을 포함한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해 4월부터 8개월 연속 감소세로, 2010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장기간 감소다. 아파트값 하락과 고금리 부담, 전쟁·이상기후로 인한 고물가, 엔데믹 해외여행 급증 등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 여파는 고스란히 자영업에 타격을 입혔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1.24%로, 2022년 말(0.69%)의 두 배에 육박하는 것은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새로 경제수장을 맡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어깨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지난해 어둡고 긴 터널 속을 지나왔던 우리 수출은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뒷심에 결국 하반기 증가세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올해 상반기도 이 수출 기세가 이어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하지만 풀뿌리와 같은 내수는 아직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출이 살아나도 그 온기가 경제 곳곳까지 흘러가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에 얼마나 더 많은 풀뿌리 경제 주체들이 쓰러질지 모른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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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포장한 귤과 사과를 건네주던 과일가게 아저씨도, 토스트에 넣을 계란부침을 부치던 아주머니도 손님들 앞에서는 웃음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빚을 내가며 장사를 이어가야만 했던 고통과 고단함이 배어있었을지도 모른다. 글로벌 경제 위기에서도 견뎌낼 체력이 있는 대기업들과 달리 풀뿌리 자영업자들은 벼랑에 매달려 버티는 것이 고작일지도 모른다. 곧 발표될 ‘최상목표 새해 경제정책방향’에 내수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과감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들이 포함되기를 바라본다.


세종=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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