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국내 초연, 2019년 재연 이어 세 번째 시즌
앙상블 군무, 실물 크기 구체관절 '말' 눈길
11월19일까지 LG아트센터

질긴 쇠사슬이나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관계도 야망이나 욕망이 틈입하면 쉽게 끊기고 부서지기 마련이다. 어릴 적부터 의지하며 형제나 다름없이 성장한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 뮤지컬 ‘벤허’의 주인공인 명망 높은 유대 귀족 벤허와 그의 친구 메셀라의 우정은 출세욕 앞에 산산조각난다. 배경은 서기 21년, 제정 로마 시기의 박해를 받던 예루살렘. 어릴 적 벤허와 단단한 우정을 이뤘던 메셀라는 로마 장교가 되어 벤허와 재회하지만, 숱한 전쟁의 풍파를 견디고 신임 총독의 경호 임무를 맡아 귀환한 메셀라는 이미 과거의 그가 아니다. 로마 박해에 신음하는 유대의 독립을 꿈꾸는 벤허에게 오히려 유대 폭도 소탕에 도움을 줄 것을 제안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금이 가고 만다. 다음 날 신임 총독 행군을 옥상에서 구경하던 벤허의 여동생 티르자의 실수로 총리를 향해 기왓장이 떨어진 것을 계기로 메셀라는 벤허 가문을 역적으로 몰아 본인의 출세 발판으로 삼는다. 뮤지컬 ‘벤허’는 이런 갈등의 시작과 끝을 155분간 그려낸다. 미국 작가 루 월러스가 1880년 발표한 동명의 역사 소설을 원작으로, 국내에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59년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AD
원본보기 아이콘

‘벤허’의 여러 매력 중 하나는 화려한 퍼포먼스다. 로마군 진용의 생생함은 영화와는 다른 위압감을 전달한다. 특수효과로 꾸며진 영화와 결이 다른 ‘극’의 현장감은 눈과 귀의 감각 수용치를 최대로 끌어올린다. 앙상블의 군무는 그 자체로 화음을 이룬다. 망토가 펄럭이는 육중한 갑옷과 방패, 창, 깃발이 자아내는 진군 소리는 뮤지컬 속 하나의 ‘넘버’라 할 만큼 매력적이다.


스크린의 적절한 사용은 작품에 몰입감을 더한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가운데 벤허는 로마 군함에서 3년간 노를 젓는 일을 하는 상황. 로마 군함의 모습은 반투명 스크린에 비쳐 선상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연출한다. 인위적인 3D 이미지 느낌이 다소 엿보이긴 하지만, 작품의 몰입에 크게 방해될 정도는 아니다. 배우 뒤의 ‘배경(背景)’이 아닌 앞의 ‘전경(前景)’ 느낌은 참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해적의 습격을 받아 로마 군함이 침몰하고, 벤허가 수중에서 로마 사령관을 구출하는 장면은 바닷속 생생함을 전한다.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원본보기 아이콘

유다와 메셀라가 어릴 적 약속했던 전차경주를 벌이는 장면은 극의 하이라이트다. 순수했던 시절의 약속이었지만, 이제는 목숨을 내건 대결이 된 전차경주는 실물 크기의 구체 관절 말 8마리가 대결을 펼친다. 각 4마리가 끄는 전차 2대가 원형무대에 올라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양한 시도로 촘촘하게 극을 연출했다는 느낌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말의 기계 작용에 집중할 경우 다소 투박함 움직임이 몰입도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콜로세움 영상 배경과 조화를 이루는 ‘전경(全景)’에 집중하는 편이 좋다.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원본보기 아이콘

배우들의 선 굵은 연기로 공연은 묵직함을 유지한다. 벤허로 분한 신성록은 잔 근육질 몸매로 배역을 소화하며 암울한 상황 속 고통을 노래한다. 메셀라 역의 박민성은 강렬한 고음으로 거침없는 욕망을 토설한다. 로마 해군 사령관 퀀터스 역의 이정열은 특유의 중후한 목소리로 포기를 모르는 군인을 열연한다. 유대 로마 총독 빌라도 역의 김대종의 목소리는 탄탄한 안정감으로 몰입도를 높인다. 빌라도는 대체로 진중함을 유지하나,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AD

공연은 오는 11월1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막을 올린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