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종가와 그 문화를 보유한 곳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종가 고택만도 수십여 곳, 안동 지역 불천위 제사만 총 50위에 달하니 돌아보면 종가요, 치이는 것이 종부라고 한다. 얼마 전 취재차 찾은 안동 도산면 농암종택에서는 17대 종부 이원정 씨가 가양주인 ‘일엽편주’를 빚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어부가’로 유명한 농암 이현보의 17대 종손이 사는 농암종택은 600년 역사를 품고 바로 앞 낙동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고려 시대인 1370년 농암의 고조부인 이헌이 처음 세운 종택 중앙 건물인 ‘긍구당’은 조상의 유업을 길이 이어가라는 뜻을 공간을 통해 오늘까지도 전하고 있다. 바로 옆 애일당은 1512년 농암이 노쇠한 부모를 모시기 위해 직접 지은 공간이었다. 하루하루의 날을 아낀다는 뜻만큼이나, 나이 드신 부모와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식의 절박한 효심이 녹아있는 곳으로 아름다운 풍광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기록에 따르면 농암이 안동부사로 재직하던 1519년 신분과 성별을 불문하고 안동 부내 80세 이상 노인을 모시고 이곳에서 ‘화산양로연’을 열어 장수를 축하하는 잔치를 열었는데, 농암은 부사 신분에도 노인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직접 색동옷을 입고 춤을 췄다고 하니 그 지극한 효심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옥 스테이로 운영되던 농암종택은 코로나19의 여파로 한동안 한산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따뜻한 밥을 지어 손님을 대접하고 부지런히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단장하던 일상이 사라지자 바쁘게 흐르던 종부의 시간도 함께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그때 며느리가 가양주로 빚던 술을 세상에 내놓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이 조심스러워 종부는 연신 사양했지만, 이어지는 설득에 결국 응하게 됐다. 오직 깨끗한 쌀, 누룩, 그리고 물 세가지 재료만 사용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방식 그대로 빚어내는 술에는 농암의 ‘어부가’의 한 구절, 퇴계가 농암에게 보낸 어부단가 중 ‘일엽편주(一葉扁舟)를 만경파(萬頃波)에 띄워 두고’에서 가져와 ‘일엽편주’라 이름 붙였다.
가양주로만 전해오던 술이 ‘일엽편주’로 세상에 나오자 귀한 술을 만나기 위해 주문이 이어져 지금은 품귀현상이 빚어졌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 방식만을 고집하다 보니 생산량이 극히 적어 수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운 좋게 도가에서 병입하는 날 이곳을 찾은 덕에 한 잔 시음할 수 있었는데, 누룩과 쌀, 물만 썼다는 술에서 깊고 그윽한 꽃향기가 나서 혹 꽃이나 다른 재료를 넣느냐 물으니 종부는 손사래를 치며 "전통 방식으로만 빚는데도 그 맛이 나니 신기할 따름이지요"라며 웃는다.
제사에 오르던 가양주가 브랜드로 출시돼 대중 앞에 선보이고, 종가음식이 메뉴로 개발돼 관광상품으로 자리매김하는가 하면 지난 유둣날에는 동암고택 수졸당에서는 유두절 제사를 맞아 그 과정을 일반에 공개하고 이날 제사에 올리는 집안 음식인 건진국수를 대접하는 시간을 가졌다. 400년간 종부의 손을 거쳐 내려온 건진국수는 그해 수확한 밀과 콩을 가루 내서 반죽한 다음 얇게 펴내 자른 뒤 찬물에 건지는 전통 국수인데 반죽법부터 육수를 우리고 꾸미를 올리는 법까지 전통 방식 그대로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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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고스란히 옛 모습으로 지키느냐, 새로운 모습에 맞춰 변화하느냐 갈림길 앞에서 안동 종가의 후손들은 전통을 나누고 알리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전통에 관심을 갖고, 그 전통이 이어지게 하는 것이 어른의 몫이란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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