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수' 해녀들 수산물 오염에 밀수로 생계 이어
1970년대 고도성장 열매는 결국 성공한 자들에게만
"보셔, 보셔, 보셔, 보셔. 이거 일본에서도 못 구하는 거야, 이거." "언니! 그건 왜 보여줘. 패티김 쇼에도 내가 안 넘긴 물건인데 이거, 어머! 언니, 이 목도리는 진짜 안 돼. 나 정말 난처해져." "아니, 그럼 가져오질 말던가."
영화 '밀수'에서 조춘자(김혜수)는 부잣집 부인들을 상대로 고급 수입품을 판매한다. 코트, 목도리, 잡지, 향수, 구두…. 하나같이 밀수품이다. 세관원을 매수하거나 속이거나 눈을 피해 엄청난 규모로 들여왔다. 그것으로 부잣집은 만찬을 근사하게 차리고, 멋쟁이들은 온몸을 치장했다. 1970년대 고도성장이 소비 욕구를 일깨우고 멋을 한껏 부리도록 부추겼다. 그 결과 합법이건 불법이건 수입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19세기 미국에서도 도드라진 흐름이다. 피터 안드레아스 브라운대 정치학과 교수가 쓴 '밀수꾼의 나라 미국'에 따르면 뉴욕 사교계에서 세계시민주의 풍조가 일어난 건 외국 문물을 모방해서다. 이는 밀수를 통해 가능했다. 당시 상류층 여성들은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서 거액을 주고 갖가지 의상을 사 왔다. 높은 관세에도 소비 욕구를 맹렬히 분출했다. 사철 변하는 유행을 따라가려면 밀수라도 해야겠다는 발상에 놀랄 이유가 없었다.
대호황 시대 미국은 쇼핑객의 나라로 전해진다. 정확히 말하면 불법 쇼핑객의 나라였다. 어떻게 수치를 산출했는지 의문이지만 미국 관세청은 1872~1873년 회계연도에 여행객 3만6830명이 1억2890만5000달러(현 물가로 환산하면 약 28억 달러)에 이르는 외국 상품을 밀수했다고 추정했다. 대부분은 옷에 숨기고 들어왔다. 구두부터 모자까지 감출 수만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활용했다. 그래서 여성이 더 유리했다. 너풀거리는 치맛자락과 우아한 모자 또는 머리 장식에 물건을 숨겼다. '하퍼스 뉴 먼슬리 매거진'은 "여성이 남성보다 밀수꾼으로 활약하기에 조건이 좋다. 복잡한 옷을 입을수록 사업이 수월해진다"고 전했다.
'밀수'에서 물건을 몰래 들여오는 여성들은 훨씬 더 진취적이다. 바닷속에 들어가 해삼, 전복 등을 따던 해녀들이다. 능숙한 잠수질로 밀수품을 건져 올린다. 애초 범죄에 가담할 생각은 없었다. 인근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수산물이 오염돼 먹고 살길이 막막해졌다. 그렇게 손을 댄 밀수품은 경제적 성공을 이룬 자들에게 돌아갔다. 당시 정부가 집중적으로 육성해 수출 증대를 이끈 산업은 중화학공업. 바로 어민들의 삶을 가로막은 주체다.
따지고 보면 피해자는 차고 넘친다. 중화학공업에 집중된 투자로 경공업은 생산 부족을 겪었고, 농촌사회는 점차 붕괴했다. 공업 분야에선 고강도 노동이 증가했다. 단순생산직 노동자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1975년 217시간에서 1980년 223시간으로 늘었다. 학력·직종·기업·성별 등에 따른 임금 격차마저 심화해 양극화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됐다. '밀수'에 수록된 건전가요 '잘살아보세'가 무색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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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 금수나 강산 어여쁜 나라 한마음으로 가꾸어 가면 / 알뜰한 살림 재미도 절로 부귀영화는 우리 것이다. /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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