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잇수다]죽음 앞에서 새로운 시작을 노래하는 ‘상엿소리’
“북망산천 머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 주오”
장례문화가 현대화되면서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과거 초상을 치를 땐 관을 실은 상여를 장정들이 메고 운구할 때 부르는 ‘상엿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망자를 애도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였으되 죽은 이가 노래를 들을 수는 없으니 결국은 살아남은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음악이었다. 상여 소리꾼이 앞소리를 메기면 상두꾼 여럿이 뒷소리를 받거나 두 패로 나뉘어 주고받는 식으로 부르는데, 선창자인 상여 소리꾼에게는 목청 못지않게 장단은 요령으로, 가사는 즉석에서 만들어 부르는 기지가 요구됐다.
구슬픈 상엿소리에는 이별의 슬픔과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 그리고 인생무상이 깃들어있다. 그래도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했기에, 상두꾼들은 슬픔에만 잠겨있는 유족들을 위로하고자 상여 운구 전날 연습을 핑계 삼은 빈 상여 놀이로 분위기 전환을 꾀하기도 했다. 상두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상가 마당에서 상엿소리를 하면 상가에서는 상두꾼들에게 술, 안주, 닭죽 등 음식을 대접한다. 유족을 비롯해 상주의 지인들이 거나하게 취하면 친구가 나서서 가짜 상주 노릇을 하며 망자에 대한 넋두리를 하기도 하고, 유족을 상여에 태워 놀이를 하는 등 장난을 치고 마음을 나누며 잠시간 슬픔을 잊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시신은 더 무겁다는 통설 때문일까. 통상 상여는 무게가 상당했던 탓에 마을 사람들끼리 상두계를 만들고 서로서로 장례 때마다 상여를 메주곤 했는데 장정 열 명에서, 많게는 서른 명 이상이 들고 날라야 했다. 이 무거운 상여를 오직 여자들만 나르는 지역이 있었는데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전해오는 ‘연도 여자 상엿소리’는 오직 여자들이 주축이 돼 장례를 이끈 드문 사례로 손꼽힌다. 1980년대 연도 지역의 한 주민은 구술에서 그 배경에 대해 “섬에 사는 남정네들이 고깃배 타고 바다로 나간 건 먹고살기 위해 그런 거라 쳐도, 젊은 장정들이 있는 대로 징용 뽑혀 나가던 태평양 전쟁 당시는 참말로 이 섬에 남자라 카는 것은 코빼기도 보기가 어려운 판이니 초상이 나면 우짭니꺼, 여자들이라도 장사를 지내야지”라고 설명했다. 아픈 역사도 한 이유였겠지만, 섬의 오랜 구전 설화도 그 배경이 됐다. 연도 동쪽에 장사샘이 있어서 남자가 이 샘물을 마시면 악인의 운명을 지닌 장사(壯士)가 되거나 불구가 되곤 해 화를 면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이 샘을 메워 버린 후로 힘센 남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생겨 여자들이 생활을 주도하고 상여까지 메며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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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들이 모여야 겨우 나를 수 있던 상여를 운구차가 나르는 시대, 슬픔도 웃음도 이제는 장례식장 안 엄숙한 분위기로 가라앉은 사이 잊혀진 상엿소리는 작품으로 박제돼 무대에서만 들을 수 있게 됐다. 상엿소리로 구성된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공연 ‘꽃신 신고 훨훨’은 서도와 남도, 경기에서 전해오는 지역의 소리를 한데 모아 선보인다. 처연하고 담담한 ‘서도 상엿소리’, 인생의 다양한 감정을 노래하는 ‘경기 상엿소리’ 흥으로 삶의 미련을 날려 보내는 ‘남도 상엿소리’까지. 이제는 박제된 문화재로 그 순간에 멈춰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상엿소리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삶의 끝에서 마주하는 평안의 메시지를 사라진 문상객, 그리고 새로운 관객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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