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인류가 직면한 '위험사회' 연대·협력의 지혜 필요
산업성장이 초래한 새 위험 직면
대립·갈등 대신 신뢰 구축 절실
세계적인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성을 표현하는 핵심 개념으로 ‘위험사회’를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개념은 20세기 말을 통과하면서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앤서니 기든스의 이론과 함께 성찰적 현대화, 제2의 현대성 등으로 확장하며 논쟁적 과제와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벡의 이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인류는 각종 위험(danger)를 줄이는 방향으로 환경을 개선해왔으나 그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인류가 착안한 발명의 산물은 새로운 위험(risk)을 야기했다. 특히 산업과 기술의 비약적 성장은 다양한 위험을 더욱 키웠다. 위험사회는 이 새로운 위험을 줄이는 데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럭저럭 버티고 있지만 인류는 해를 거듭할수록 극심해지는 이상기후, 주기가 짧아지는 금융위기, 끊임없이 이어지는 테러와 전쟁 그리고 팬데믹 등으로 불안하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기후위기, 1년 이상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고물가와 가파른 금리인상,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녹록지 않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78명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3년부터 꼴찌다. 이런 추세라면 2025년에는 0.61명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미래를 견인할 세대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은 최고 수준이다.
경제는 저성장 속 글로벌 기준금리 인상 기조의 여파로 살얼음판이다. 뒤늦게 정부가 나섰지만 지난해 4분기 가계 실질 소득은 이미 일년새 1.1% 줄었고, 시중은행 신규 연체율은 평균 0.09%로 2배 이상 상승했다. 취약계층 위기가 이미 시작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황,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 세계 식량 위기 전조 증상 등을 감안하면 불안함을 거두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마지노선이어야 할 정치마저 위험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전 정부의 정책에 대립각을 세우면서 이른바 ‘레토릭’ 정치를 이어가고 있고, 노출된 위험에 후행하는 설익은 경제, 복지, 노동 대책을 쏟아내며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안보외교와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한 경제외교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공정과 정의를 둘러싼 갈등은 가치의 혼란과 불확실성을 되레 부추기는 모양새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야기하고 극도의 불안은 신뢰를 훼손하기 마련이다. 신뢰가 훼손되면 위험에 대한 어떠한 대응도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실제 국제조사기관 월드 밸류 서베이가 최근 내놓은 한국의 사회적 자본은 위태로운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믿는지에 대한 물음에 32.9%만 믿는다고 답해 뉴질랜드, 독일, 미국, 일본보다 낮은 하위권에 속했고 정부, 의회, 언론에 대한 신뢰도 역시 각각 12.9%, 14.2%, 13.7%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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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작고한 벡은 위험사회를 극복해 나가는 해법으로 ‘연대’와 ‘협력’의 지혜를 제안했다. 개인과 개인의 연대,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의 연합, 국가와 국가 사이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지난 2014년 한국을 찾은 그는 "정부가 신뢰를 잃게 되면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위험이 배가 된다. 먼저 신뢰를 구축한 이후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각종 사회, 경제, 정치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 대립과 갈등이 일상화된 오늘, 되새겨봐야 할 조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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