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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끈적한 물가…한은, 완화 시그널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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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재 한국경제학회장·서울대 석좌교수
경기보다 물가에 더 중점둬야
긴축 기조 분명히 해야
공공요금 통제 반복적이면 사회적 비용 급증

한국경제학회장 황윤재 서울대 교수.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한국경제학회장 황윤재 서울대 교수.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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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현재 한국경제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끈적한 물가(sticky price)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한국은행은 긴축 기조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더라도 완화 시그널(신호)을 줘서는 안된다."


이달 한국경제학회장으로 취임한 황윤재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지난 20일 서울대 교수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한은에 긴축 기조 유지를 강력히 주문했다. 한국 경제가 둔화 국면을 맞았다는 정부의 첫 공식 진단이 나온 가운데 고물가 상황이 이어지면서 통화정책의 무게추를 성장과 물가 어느 쪽에 두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지만, 지금은 물가에 방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미국의 물가·고용·소비 지표가 일제히 긴축 시계를 가리키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예상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더 오래 이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 연 3.5%까지 기준금리를 끌어올린 뒤 이제 정점에 도달했다는 시장 인식이 확산했지만 최근 미국발 긴축 공포가 되살아나면서 국채금리와 환율이 상승하고 있다. 황 교수는 "물가는 파급력이 있어 계속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면서 "섣불리 완화 시그널을 주면 나중에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돼 훨씬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물가·고금리에 글로벌 경기둔화까지 겹치면서 한국 경제가 비상 상황에 처해있다. 현재 최대 리스크를 꼽는다면.

▲현재 한국경제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5.2%, 근원물가도 5.0% 상승하면서 주춤하던 물가가 올해 다시 오르고 있다. 공공요금 인상이 물가상승을 부채질하고 있고, 심리적으로 연쇄작용을 일으키면서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도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완화)을 언급했지만 물가가 둔화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야말로 '끈적한 물가(sticky price)' 상황이다. 2월 수출은 적신호가 켜졌다. 글로벌 경기 둔화, 반도체 업황 악화로 수출이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5개월 연속 전년 대비 감소할 가능성이 커졌다. 향후 추이는 소규모 개방경제 특성상 주요국 금리추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등 대외여건 변화와 국내 정부 정책 방향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고금리로 국민들이 고통받는 상황인데, 가계부채와 신용위험으로 인한 금융시스템 불안정 가능성도 주요 리스크다.


-금통위를 앞두고 있다. 성장과 물가 갈림길에서 한은의 고민이 깊은데.

▲물가와 경기 양자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게 관건이지만 현재로서는 물가에 더 중점을 두고 긴축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공급자 측 요인도 강하게 작용하므로 금리인상만으로 인해 물가를 낮추기는 쉽지 않다. 내일 금통위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만일 동결하더라도 향후 긴축을 유지할 것이라는 시그널을 분명히 줘야 한다. 일시적인 동결이지, 상황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인상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당연히 경기를 살리고 싶겠지만, 한은은 미국의 1970년대 과오(인플레가 번지는데도 경기를 살리려다 최악 스태그플레이션 직면)를 떠올려야 한다. 지금은 긴축 기조를 분명히 하고, 시장에 섣부른 금리인하 기대감을 심어주지 말아야 한다. 물론 고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인 지원은 필요하다.

-난방비 폭탄으로 민생경제가 어려움에 처하자 정부가 에너지 요금 인상 속도조절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하반기 인상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공공요금 통제는 인플레이션이 급속히 악화될 경우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추고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이런 요금 통제는 가급적 한시적이어야 하며, 통제가 반복적·지속적일수록 사회적 비용은 급속히 증가할 수 있다. 에너지 원가 상승요인을 정기적으로 심사해 체계적으로 공공요금에 반영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조직(기구)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대중의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고 에너지 절감을 위한 기술 혁신유인도 제공해야 한다.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정부 지출을 위한 구체적인 재원 계획도 뒷받침된다는 전제하에서 선별적인 방식으로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 현 지원 시스템은 지나치게 복잡해 적격자가 수령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지원 체계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학회장 황윤재 서울대 교수.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한국경제학회장 황윤재 서울대 교수.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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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업 과점 폐해가 크다며 예대마진 축소를 주문했다.

▲은행산업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므로 금융시스템이 올바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부의 감독과 규제가 필요하다. 국내 은행산업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과 합병 등으로 시장집중도가 크게 상승했다. 이론적으로 시장집중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산업 내 경쟁도가 낮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은 은행의 대형화로 규모의 경제 등 비용효율성은 크게 제고되지 않은 반면 여·수신 시장에서 은행간 경쟁완화를 통해 이익효율성이 크게 높아지고 시장지배력이 강화됐다는 실증 연구결과들이 있다. 은행 산업 내 경쟁수준은 자금배분의 효율성에 영향을 미친다. 독점적일 경우 은행은 과도한 이윤을 획득하고 시장에 충분한 자금을 공급하지 않거나 높은 비용을 자금 수요자에게 부과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은행 산업의 경쟁도를 높이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자금배분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찬성한다. 다만 지나친 경쟁요소 도입으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위협받지 않도록 모니터링해야 한다.


-반도체 수요 감소와 대중 수출 급감으로 수출 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은.

▲반도체 수출은 세계적 경기회복 속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중국 리오프닝은 수출 감소세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리라 기대한다. 탈세계화와 경제블록화 추세에서 한국 경제는 무역과 투자대상 다변화가 필요하다. 한류로 한국의 인지도는 크게 높아졌지만 남미, 아프리카, 동유럽 등 아직 우리가 개척하지 못한 시장도 많다. 특히 공급망 다변화와 함께 대체 불가한 기술력을 보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하에서 미국 포드와 중국 배터리업체 CATL이 기술협력을 하는 사례만 봐도 결국 기술력이 핵심이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협력한다는 것이다. 기술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자유롭게 창업할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정부가 안전망을 제공하는 동태적인 산업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스타트업 천국으로 불리는 이스라엘에 세계 자본이 모여들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잘 발달돼 있는 만큼 스타트업 기업을 적극 양성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회복을 위해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내걸었다. 시급한 과제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 근로시간의 유연성 확보가 비교적 접근이 쉽다. 코로나19 이후 MZ세대들은 재택근무를 선호하고 상황에 따라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쓰기를 원한다. 능력이 더 좋은 사람에게 더 높은 임금을 주는 임금유연성도 부분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금개혁은 구조개혁의 큰 테두리 안에서 모수개혁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교육개혁을 위해서는 대학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수도권 대학 정원에 대한 규제가 엄격한데 학문의 발전에 따라 정원을 줄이거나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은 디지털 분야 인재 육성을 위해 도쿄 소재 대학 정원 증원을 허용했다.


-한국경제학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올해 목표가 있다면.

▲국내외 수준 높은 학술대회 개최를 통해 학문적 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다른 학회·기관 등과 경제 현안에 대한 정책 심포지엄을 적극 개최할 예정이다. '경제학계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경제학자대회가 2025년 서울서 개회되는데 대회 유치를 위해 학회가 노력했다.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도록 준비해 한국 경제학계의 세계적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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