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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난 사람]"내 말이 맞다" 오류의 시작…"틀릴 수 있다" 인지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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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생각하고 쉽게 비판하는 사회
실행해보면 오류 줄일 수 있으나 극히 일부
상대 손가락질 줄이고 자신 오류 인정해야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화려함과 뛰어남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모델의 아름다움을 빛내주는 옷이 내게 와서도 동일하게 빛을 발할 것으로 생각되고, 시원하게 뽑아내는 가수들의 열창을 보고 있자면 내 입에서도 같은 멜로디가 흐를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결과는 많은 이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듯이, 그 옷이 그 옷이 아니며, 그 노래가 그 노래가 아니다. 쉽게 생각됐는데, 실제는 생각과 같지 않다.


춤도 마찬가지다. 안우경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석좌교수는 자신의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BTS의 6초짜리 춤 영상을 보여주고 잘 따라 하면 상을 준다고 제안했다. 뒤로 걷는 듯한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와 같은 춤을 수십 차례 보여주고 희망자를 받았다. ‘그래봐야 6초인데 어려워 봤자지’라고 생각하는 학생 10여명이 의기양양하게 강단에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마구잡이로 팔을 흔들며 폴짝대는가 하면 타이밍에 어긋난 난데없는 발차기도 튀어나왔다. 3초 만에 포기자가 나오더니 머지않아 모두가 춤을 거둬들였다.

안 교수는 이를 ‘유창성 효과’라고 설명한다,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착각을 부르는 효과다. 생활 속에서 쉽게 생각하고 쉽게 비판하는 상황 중 다수가 이런 심리에 기반한다. 오류와 실제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실제로 부딪히는 방법이 주효하지만 안 교수는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극히 일부"라고 전한다. 이런 ‘사고의 오류’가 존재하는 세상을 인지심리학을 통해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 ‘씽킹101(흐름출판)’의 저자 안우경 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책으로 만난 사람]"내 말이 맞다" 오류의 시작…"틀릴 수 있다" 인지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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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심리학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현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며, 인지심리학으로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생각의 오류가 너무 많아 하나를 꼽기 어렵지만 ‘확인편향’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확인편향이 일어나는 작용원리 중 하나는 어떤 방법이 성공하면 그것만이 정답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산후 조리할 때 미역국을 먹으면 젖이 많이 나온다고 믿는다. 실제로 나도 많이 먹었고 미역국 효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역국 때문만이 아닐 수도 있다. 뜨끈한 국물이 좋은 것은 아닌지, 단순히 수분이 많으면 좋은 건 아닌지, 심지어는 뭐든 먹기만 하면 되는 건 아닌지 검증해봐야 한다. 다른 가능성이 무한한데 처음에 믿은 가설과 부합하는 경우만 보고 단정을 짓는 것이 확인편향이다. 이런 오류는 개인·사회적으로 실제로 많이 일어난다. 이 오류를 제거한다고 해서 종양 제거하듯 삶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악영향을 막으려면 원인과 작용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그럼 최소한 당연히 맞는 줄 알았던 결론이 틀릴 수 있다는 마음은 갖게 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확인편향에 따른 갈등이 극심하다. 한국이 유독 심한 편인지.

▲미국도 진보와 보수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인터넷도 여러 이유 중 하나다. 유튜브나 틱톡, 페이스북 등의 알고리즘이 좋아할 만한 것만 추천하는데 이 또한 확인편향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찾는 것도 이유가 된다. 수술 부작용을 의심하는 백내장 환자가 ‘백내장 수술 부작용’을 검색해 부작용에 관한 기사를 보고 자신의 의심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echo chamber effect(반향실 효과-·선호하는 정보만 취득하는 경향)’가 형성돼 메아리처럼 같은 의견을 공유하며 확신을 강화하게 된다.


-확인편향에서 탈피하는 인지심리학적 방법이 있을까.

▲아직 실험적으로 검증된 방법은 없다. 몇 시간 훈련받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인지적 구두쇠이기 때문에 관성을 따르려는 습관이 있다. 하던 대로 하려는 것이다. 이런 때는 새로운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백내장 수술 부작용’이 아닌 ‘백내장 수술’로 검색해보는 거다. 제도적 변화도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별 것 아니라며 예방접종을 무시하는 사람이 꽤 많았는데, 접종 없이는 등교를 막으면서 많은 효과를 봤다.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모든 사람이 확인편향을 지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다. 생각이 같든, 다르든 이 사실을 인정할 때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다.

-정보 습득이 편리해지면서 ‘경험’이 간과되고 있다. 언제든 검색하면 된다는 생각에 모르는 내용을 안다고 착각하기도 하고, 기성세대의 경험이 무시되기도 한다.

▲유튜브로 보면 못할 요리가 없고 못 고칠 물건이 없는 것만 같다. 구글맵 지도 찾기도 마찬가지다. 보기에는 쉬운데 한 학기 강의를 맡은 싱가포르의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예일 NUS(Yale-NUS) 대학을 벌써 3주째 50분 가까이 헤매고 있다. 이런 걸 책에서 ‘유창성 효과’라고 설명했다. 요새는 모든 것이 쉽고 간단하게 설명돼 있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착각을 유도한다. 생각과 해보는 것은 다르다. 그런 점에서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진실을 교묘하게 호도하는 ‘가짜뉴스’도 사회적 문제로 지목된다.

▲최근 가짜뉴스에 관한 인지과학 연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중 몇 가지는 앞서 언급한 인지적 구두쇠와 연관이 있다. 인간 두뇌는 기억용량이 제한되기에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을 잊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사실을 습득할 때 경로나 과정보다는 내용을 더 잘 기억한다. 거북선을 예로 들어보자.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건 알지만 언제, 누구에게 들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짜뉴스도 마찬가지다. 소문이나 신뢰도 낮은 매체에서 나온 정보라는 사실을 간과하면 가짜 내용만 남게 되고 곧 진짜처럼 여기게 된다. 의심은 그만큼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인지적 구두쇠인 인간은 듣는 얘기 대부분을 사실이라고 간주한다. 의심하는 경우에도 잘못된 정보에 반복 노출될 경우 거짓에 빠져들기 쉽다.


-팩트를 두고도 해석이 다른 경우가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같은 상황을 두고 정반대 해석을 내놓아 국민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한다.

▲비단 생각이 이상하거나 이기적인 사람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인간은 자신이 아는 것을 바탕으로 매 순간을 해석한다. 전문 용어로 ‘하향식 처리(top-down processing)’라고 하는데, 이게 없으면 생존이 불가하다. 앞에 호랑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호랑이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에 호랑이가 아무 위협적인 행동을 안 해도 위험하다는 해석을 할 수 있고, 당장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은 생존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사람마다 배경지식이 달라 해석이 제각각이란 점이다. 제각각인 배경지식을 바꿀 수도 없기에 생각을 합치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해석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중요한 건 해석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나쁘거나 우둔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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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편파적 해석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나. 어떻게 대해야 하나.

▲사고 오류 중 가장 고치기 힘든 것 중 하나가 편파적 해석이다. 다만 틀렸다고 손가락질하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할 수 있는 해결책 찾기에 초점을 두는 것이 더 효율적인 문제 해결법이라고 생각한다.


-오류와 편향을 발견했다고 해도 변화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책을 읽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독자들에게 조언을 전한다면.

▲지금까지 얘기한 확인편향을 포함해 책에는 여러 종류의 생각 오류가 나와 있다. 그런 것들을 다 고쳐야 한다는 잔소리로 읽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억지로 해도 되는 건 거의 없다. 책을 쓰면서 많은 오류와 과신이 왜 일어나는지, 그 결과는 무엇인지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바라기는 그런 설명이 이해되면서 자연스럽게 생활 속 오류를 인지하고 고치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면 한다. 책에 나온 실험이나 예제를 남들과 얘기하면서 토론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안우경 저자는 누구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석좌교수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리노이대학교 어배너-섐페인 캠퍼스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예일대학교에서 조교수로, 밴더빌트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재직했다. 아이비리그 심리학과를 통틀어 정교수가 된 최초의 한국인 학자로, 2022년에는 예일대학교에서 우수 교사에게 수여하는 렉스 힉슨 상(Lex Hixon Prize)을 받았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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