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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K-우먼]"지휘 남성적 영역이지만 관계 소중히 여기며 난관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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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전형, 마에스트라 여자경
프로의 덕목 '실력', 리더의 책임감, 성실함
"선한 마음으로 좋은 영향 끼치는 사람 소망"
"희망은 인류애에서 온다고 믿는다"

[파워K-우먼]"지휘 남성적 영역이지만 관계 소중히 여기며 난관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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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오케스트라여도 지휘자에 따라 결과물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마음에 드는 좋은 소리를 끌어냈을 때 그 맛은 뭐라 표현할 수 없어요. 그것이 지휘봉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사람의 음성에도 지문처럼 고유의 특징이 있다. 여자경 지휘자의 음색은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대리석 같은 단단함이 느껴진다. 말할 때마다 짓는 미소도 마찬가지.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아쉽게도 저는 굵직굵직한 국제 수상경력은 없습니다. 한국이 요즘 국제 콩쿠르를 휩쓸다시피 하는데 저는 국제지휘 콩쿠르에서 1등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제가 콩쿠르에서 열광하는 지휘자는 아닌 듯합니다."


여 지휘자의 겸손한 소개와 달리 그의 경력은 간단치 않다. 그는 빈 국립음악대학교 대학원 유학 시절인 2003년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오케스트라가 뽑은 지휘자상’을 수상하며 이목을 끌었다. 그 후 2005년 한국에서 최초로 열린 제1회 수원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특별상(Special Prize)을 수상했다.


그가 확실하게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8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프로코피예프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부터다. 러시아 콩쿠르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수상자 명단에 오른 것으로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그때가 30대 중반의 나이. 이후 유럽에서 빈 라디오 심포니오케스트라, 프랑스 브장송 시립오케스트라, 파리 리옹 국립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했고, 국내에서는 KBS 교향악단과 서울 시립교향악단 등을 객원 지휘했다.

‘마에스트라’는 여성 지휘자를 칭하는 말. 그동안 지휘자라고 하면 당연히 남성에 ‘마에스트로’밖에 모르던 국내 클래식계에 여 지휘자의 등장은 신선했다. 2017년 10월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기념 청와대 국빈공연을 KBS 교향악단과 연주해 존재감을 떨쳤다.


여자경 지휘자(사진제공=여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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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클래식을 잘 모르는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것은 2020년 초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등장하면서다. 당시 유재석이 하프 연주자로 참여하는 코리안심포니 공연의 지휘를 맡은 그는 유씨의 초고속 오케스트라 데뷔를 위해 베토벤의 가곡 ‘이히 리베 디히’를 하프 연주가 돋보이도록 편곡했고, 유재석은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에 반해 "멋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누구나 그러하듯 그 역시 어린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탤런트가 가장 되고 싶었고, 연극인, 피아니스트, 시인, 선생님, 화가 등등도 꿈꿨다. 그러다 막연하게 음악이 하고 싶어 한양대학교 작곡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현대음악 작곡이 적성에 맞지 않아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느라 오래도록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때 한 교수가 그에게 지휘 전공을 추천했다. 귀가 좋고 피아노를 잘 치며 여러 악기들에 대해 두루 알고 사람과의 소통에 재주가 있다면서.


당시 한양대학교 대학원에는 지휘과가 없었다. 그가 지휘과에 응시하면서 해당 과목 강사진과 커리큘럼이 만들어졌고, 여 지휘자는 그렇게 한양대학교 대학원 지휘과 1호가 됐다. 첫 지휘 데뷔는 1996년 5월 국립극장 대학오페라축제에 올린 ‘사랑의 묘약’. 이듬해 6월 춘천시향 정기연주회 객원 지휘를 하면서 프로로 데뷔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지휘한 무대는 족히 1000회가 넘는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음악을 업으로 삼은 것"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가장 극적인 순간 역시 음악의 길에 접어들 때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첼로를 배우고 교회에서 성가대 반주, 그리고 학교에서 합창단 오케스트라 활동을 했지만 그저 남들 다 하는 평범한 수준이었다.


"스무 살의 어느 날 밤, 음악을 내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욕구가 너무도 강하게 밀려왔죠. 방구석 벽에 기대 서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다음 비장한 각오로 부모님 방으로 가서 설득했어요. 당시 저희 집안의 분위기나 환경 속에서는 음악을 전공한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거든요."


서른 살이 되자 오롯이 혼자 힘으로 오스트리아 유학을 떠났다. 늦은 나이였지만 그는 입학부터 졸업까지 학과 과정 내내 최고 점수를 얻어 매년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야나체크 장학금과 빈 국립대학이 주는 장학금을 매 학기 받는 기염을 토했다. 전 과목 1점(A+)을 받으면 매달 약 600유로 정도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기에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경 지휘자(사진제공=여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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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임신 중에도 지휘봉을 놓지 않았다. 프랑스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 본선 때는 임신 7개월의 몸으로 빈에서 브장송까지 직접 운전을 해서 갔다. 출산이 임박한 만삭의 몸일 때도 수원에서 열린 한국 최초 국제 지휘 콩쿠르에 참가하려고 빈에서 비행기를 타고 입국했을 정도다. 의사의 소견서 제출도 모자라 문제 발생 때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까지 쓰고서.


쉰둥이로 태어난 그가 어떻게 그런 강철 체력을 소유하게 된 건지 신기할 정도다. 그만의 건강관리 비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사실 누구보다 허약 체질이고 여기저기 아픈 데도 많습니다. 그저 정신력 하나로 버티는 중이지요. 이게 다 일을 좋아해서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밤새 앓다가도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면 충전이 되거든요."


오케스트라는 하나의 작은 사회다. 리더인 지휘자의 스타일에 따라 음악은 완전히 달라진다. 20세기 클래식의 황제라 불리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오케스트라를 압도했다. 완고한 성격에 엄격한 해석을 추구했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리허설 때 연주가 마음에 안 들면 단원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해댈 정도였다.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였던 카를 뵘은 소박하지만 절제된 동작으로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획하고 연주했다. 음악을 자유롭게 즐겼던 레너드 번스타인은 감정을 끌어올리며 지휘하는 스타일이었다. 여덟 살에 지휘자로 데뷔한 로린 마젤은 지휘봉을 다루는 테크닉이 뛰어났다. 저마다 다른 스타일의 세계적인 지휘자들. 여 지휘자는 누구를 추종하는지 궁금하다.


"현재는 딱히 롤 모델이 없습니다. 저는 스스로 음악에 취해 흥분하거나 울고 웃는 타입은 아니고요. 지휘할 때는 뒤에 있는 청중보다 앞에 있는 연주자들과의 교감에 신경을 집중하는 편이에요. 연주자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앙상블을 만들도록요."


여 지휘자는 단원들과 개인적으로 불화를 겪는다든가 통솔하는 데 난관은 없었다고 밝힌다. 하지만 어떤 분야보다도 남성 위주인 클래식계에서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지휘를 해보니 남자의 영역이 맞습니다. 삶에서 포기할 것도 많고. 인성적으로도 강인해야 하고. 흔히 말해 여성적인 사람은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 많죠. 그래서 남성 위주의 세계가 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그가 후배 여성 지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간단하다. 이 세계에서 프로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보다 실력. 그다음이 리더로서의 책임감과 성실함.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일할 때 절대로 울지 말 것.


여자경 지휘자(사진제공=여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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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지휘자가 지휘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직업이 그를 더욱더 관계 지향적으로 만들었다.


"제가 지휘자로서, 나아가 한 인간으로서 소망하는 인생의 목표는 무엇을 하든 선한 마음으로 주위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희망이 인류애에서 온다고 믿거든요."


여 지휘자는 베토벤,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말러, 라벨의 곡을 잘 표현한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제일 좋아하는 곡은 베토벤 교향곡 중에서 마지막 작품인 제9번 합창교향곡 4악장. 가사로 붙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에 담긴 메시지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서로 포옹하라! 이것은 온 세상을 위한 입맞춤! 형제여 별의 저편에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으니. 모든 사람은 서로 포옹하라!- 프리드리히 실러 ‘환희의 송가’ 중에서"


"태양이 빛나는 한, 희망도 빛난다"고 말했던 실러처럼, 불굴의 의지를 작곡으로 보여준 베토벤처럼, 여자경 마에스트라가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은 가치는 바로 인류애로부터 오는 희망이다.


▶여자경 지휘자는

한양대 작곡과 학사, 지휘과 석사 출신이다. 이후 빈 국립음악대학교 지휘학 석사·음악학 박사를 받았다. 단국대 음악대학 겸임교수,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상임지휘자 등을 역임했다. 2020년 클래식 잡지 객석 선정 세계의 파워 여성 지휘자 16인에 뽑혔다. 저서로는 ‘비하인드 클래식’이 있다.


추명희 작가





추명희 기자 jedd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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