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누구를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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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식량 확보와 국민 경제 안정을 목적으로 1948년 제정된 양곡관리법이 본질을 잃고 결국 정쟁 도구로 전락했다. 더불어민주당이 28일 시장격리 의무화를 골자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법제사법위원회 통과 없이 국회 본회의에 바로 올리도록 요구하는 안건을 소관 상임위에서 단독 의결하면서다.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물론 대통령실도 직간접적으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그야말로 강대강(强對强) 대치 국면이다.


얼마 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에 거대야당이 엄연히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이라며 역대 최악으로 지각 처리된 예산안과 누더기 된 법인세 등 세법 개정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민주화 이후 최대 의석을 가진 야당과 최소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 사이의 벽 앞에 행정부 권한의 한계를 절감했다는 뜻이었다. 양곡관리법은 야당이 처음부터 작심하고 단독 처리 수순을 밟고 있어 이보다도 더한 경우다.

야당의 독주를 막을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절충안을 찾거나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인데, 전자의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 정부는 시장격리 의무화 조항만 삭제하면 타작물 재배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게 유일한 대안이나, 민주당은 시장격리 의무화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타협 불능 상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밀어붙이는 1호 법안에 윤 대통령이 1호 거부권을 행사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국민이 목도하기 직전인 셈이다.


포퓰리즘과 그 이상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애당초 자가당착의 측면이 컸다.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을 경우 일정 금액을 지원해 쌀의 생산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정책인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과 쌀 증산을 부추기는 시장격리 의무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모순적인 상황 때문이다.

가뜩이나 부족하다고 아우성인 농업 예산을 예전처럼 먹지도 않는 ‘쌀’에만 쏟아붓는 모습을 다른 농축산단체가 가만히 두고 볼 리도 없다. 소 가격 폭락과 사료값 급등으로 신음하는 한우협회는 "열 손가락 중에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면서 균형적이고 발전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한다. 심지어 육류 소비량은 곧 쌀을 추월한다.


일부 농민단체는 기초 농산물을 국가가 수매해달라, 생산비 연동 농산물의 최저가격을 보장해달라며 시장경제 기능을 왜곡하는 요구를 줄기차게 하고 있다. 때 되면 돌아오는 선거철과 맞물리면 휘발성은 상상 초월이다. 그때마다 예산을 퍼주면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일뿐더러 우리 농업의 미래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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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관리법의 취지인 국민 식량 확보에 시장격리 의무화는 부합할까. 통계적으로 봐도 그렇지 않다. 이미 95%에 가까운 쌀의 식량자급률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100%를 단숨에 넘는다. 반면 자급률이 1%에 불과한 밀의 경우 유사시 대응 가능한 공공비축 물량이 1개월뿐인데, 시장격리 의무화 시 2027년께 자급률은 아무리 높아도 4% 안팎에 그친다.


한 서린 보릿고개 길을 넘은 우리 국민에게 쌀은 여전히 중요한 주식이지만 예전만큼은 아닌 것도 사실이다. 쌀 소비는 계속 감소하는데 수요량 이상의 쌀을 정부가 한 해 조(兆) 단위 예산으로 사들인다고 한들, 쌀 가격은 특정 가격대에서 정체되거나 오히려 떨어질 것이란 게 정부와 전문가의 일관된 견해다. 모두가 진정으로, 어려움에 처한 농민을 위한 길을 찾고 있다면 많은 사람이 납득할 만한 해법을 찾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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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경제금융부 차장 kimhye@


세종=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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