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UP, 현장에서]350m 낙차로 만든 배터리…블랙아웃 '최후 보루'
한국수력원자력 청송 양수발전소 가보니
[아시아경제 청송=이준형 기자] 경북 청송군에 위치한 한국수력원자력 청송 양수발전소. 발전소 입구에서 차량으로 약 600m 길이의 지하 터널을 이동하면 2대의 대형 발전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발전 방식은 간단하다. 347m에 달하는 상부댐과 하부댐의 낙차(落差)로 발전기가 돈다. 발전기 1대당 발전용량은 300MW로, 10m 높이의 발전축이 분당 300회씩 회전해 전기를 생산한다.
양수발전소는 기저전원이 아니다. 국내 전력 공급 체계의 주력 발전원이 아니라는 의미다. 양수발전소가 원자력발전, 액화천연가스(LNG) 복합발전 등 다른 발전원에 비해 생소한 이유다.
그렇다고 양수발전소의 역할이 결코 작지는 않다. 양수발전소가 진가를 발휘하는 건 국내 전력계통에 구멍이 뚫렸을 때다. 원전 등 기저전원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가동을 멈추면, 양수발전소는 3분 내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원전, 화력발전 등 대형 발전소가 최대 출력을 내려면 최소 수 시간에서 수십 시간이 걸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양수발전소가 비상상황에서 긴급 전력을 공급하는 일종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역할을 하는 셈이다.
블랙아웃 ‘마지노’
양수발전소는 블랙아웃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꼽힌다. 양수발전소는 전력 수요가 적은 야간이나 태양광발전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에 남는 전력을 활용해 하부댐의 물을 상부댐으로 끌어올린다. 이후 전력계통에 문제가 생기거나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경우 상부댐의 물을 하부댐으로 보내 지하에 위치한 발전기를 돌린다. 굳이 잉여 전력을 사용하는 건 전기 사용량을 최소화하며 전력계통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양수발전소는 ‘발전소의 발전소’ 역할도 한다. 원전 등 대규모 발전소가 가동을 멈출 경우 재가동을 위해 소요되는 전력량은 만만치 않다. 양수발전소는 정지된 대형 발전소가 재가동할 수 있도록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전력을 3분 내로 공급한다. 실제 한수원은 이 같은 방식으로 대규모 블랙아웃 위기가 닥쳤던 2011년 9월 양수발전소를 긴급 가동해 정전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양수발전소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꾸준히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날씨에 따라 발전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전력계통 안정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태양광 발전단지에 리튬이온 배터리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ESS 설비를 함께 구축하는 것도 그래서다. 양수발전소는 리튬이온 배터리 등과 달리 글로벌 공급망 불안에 구애받지 않는 ‘친환경 ESS’ 역할을 할 수 있다.
양수발전 구축 ‘속도’
글로벌 양수발전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이다. 한수원에 따르면 전 세계 양수설비 발전용량은 165GW다. 국제수력협회(IHA)는 2030년까지 78GW 규모의 양수발전소가 추가 건설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에서는 독일, 아일랜드 등 주요국이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확대에 대비해 양수발전소를 증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에 한수원도 양수발전소 추가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수원은 이미 경기 포천, 충북 영동, 강원 홍천 등 3개 지역에서 신규 양수발전소 사업을 추진 중이다. 가장 먼저 완공되는 건 2030년 가동 예정인 영동 양수발전소로, 발전용량은 500MW다. 한수원은 홍천 양수발전소(600MW)와 포천 양수발전소(700MW)를 각각 2032년과 2034년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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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발전소 국산화도 추진한다. 칠보 수력발전 2호기를 제외하면 국내 수력 및 양수발전소 주기기는 모두 외산이다. 국내에서 수력 기자재를 생산하는 업체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워서다. 한수원은 2030년까지 300MW급 대형 양수발전소 주기기를 국산화할 방침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국내 수력 산업 특성상 외국 기자재를 사용하는 게 불가피했다"면서 "화천 수력발전 2호기를 대상으로 수력발전 주기기 국산화를 위한 정부 과제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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