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韓 빅스텝=美 자이언트스텝…환율로 통화정책 더 어려워"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서 '韓 통화정책' 강연
'포워드 가이던스' 커뮤니케이션 어려움 토로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한국은행이 이달 두 번째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에 나선 가운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의 0.50%포인트 금리 인상은 미국의 0.75%포인트 인상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환율의 빠른 평가절하가 한국의 통화정책 결정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으며,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성상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예고 지침) 이행이 쉽지 않다는 점도 토로했다.
이 총재는 15일(현지시간)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에서 '글로벌 통화정책 긴축 강화와 한국의 통화정책'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주택담보대출에서 차지하는 변동금리대출 비중이 미국에서는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60%가 훨씬 넘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서의 0.50%포인트 금리 인상은 미국의 0.75%포인트 인상에 버금가는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G) 합동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다.
이 총재는 기존 0.25%포인트씩 점진적 인상을 해나가겠다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수정하고 두 번째 빅스텝을 단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8월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변동하면서 한은도 기존 통화정책 경로를 불가피하게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면서 "9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점도표에 나타난 올해 말 금리는 7~8월 한은이 생각했던 수준보다 0.50%포인트 이상 높아진 수준이었으며, 이로 인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크게 증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급등한 원·달러 환율도 빅스텝의 주요 근거로 꼽았다. 이 총재는 "Fed의 빠른 금리 인상과 함께 주요 중앙은행 중 예외적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가 크게 절하되면서 9월 들어 한국 원화의 평가절하 속도가 빨라졌다"면서 "영국의 예상치 못한 재정정책 발표에 따른 국제금융시장의 불안도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크게 높였다"고 전했다.
반도체 사이클로 인해 한국의 무역수지가 감소하고, 원화는 위안화에 대한 대리통화로서 추가 압력을 받으면서 올해 들어 달러인덱스와 유사한 정도로 절하됐던 원화는 8월 중순 이후 미 달러화 강세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절하되면서 쏠림현상까지 나타나 한은이 변동성 완화를 위해 외환시장개입에 나서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이 총재는 "환율의 빠른 평가절하는 한은의 통화정책 결정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고 있다"면서도 과거 두 차례의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과 2008년 때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만기와 통화의 동시불일치 문제가 컸던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달리 현재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41%에 이르는 순대외금융자산을 갖고 있다"면서 "41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 낮아진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 등을 감안할 때 외화 유동성도 매우 양호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두 번의 위기 직전에 비해 실질실효환율이 장기평균에서 크게 벗어나 고평가된 모습도 경험하지 않았고, 환율상승에도 불구하고 코리안페이퍼(KP) 스프레드, CDS 프리미엄 등은 아직 낮은 수준으로 달러 조달 여건의 악화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 총재는 "글로벌 성장률 하락 전망으로 성장의 하방 리스크가 높아졌으나 예상 밖의 환율상승으로 5~6%대의 높은 물가 수준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한은은 특정 수준의 환율을 방어하려 하지는 않지만 급격한 환율변동이 금융안정에 가져올 수 있는, 예를 들어 자본유출 압력 증대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5~6%대 수준의 높은 물가상승률이 지속되는 한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며 "다만 향후 금리 인상 폭에 대해서는 11월 Fed의 결정,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 감산 등에 따른 에너지 가격 움직임, 중국의 당대회 후 제로 코로나 정책의 변화 가능성, 엔화와 위안화의 변동성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7월과 달리 구체적인 수준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지난 4월 한은 총재로 부임한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의 소회도 밝혔다. 그는 "지난 9년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하면서 소규모 개방경제의 통화정책은 금리만을 정책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는 필요에 따라서 외환시장 개입, 자본이동관리조치, 거시건전성정책 등을 조합해야 한다는 통합정책체계를 개발하는 데 일부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서 "하지만 실제 지난 수개월간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최적의 정책조합을 찾는 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실행하기 복잡한 일이지 깨달았다"고 언급했다. 특히 자본유입에 대응할 때와 달리 자본유출이 있을 경우 통합정책체계를 적용하는 데에 제약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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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포워드 가이던스로의 이행을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미래 금리경로에 대해서 가급적 언급을 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던 오랜 방식에서 벗어나기에는 현실적으로 애로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대외요인을 통제하기 어려운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성을 감안해 어느 정도, 어느 속도로 이런 관행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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