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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란의 역사책방] 은행전쟁(BANK WAR)

최종수정 2022.09.29 10:49 기사입력 2022.09.29 10:49

잭슨 대통령 vs 비들 중앙은행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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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전쟁)은 전쟁에서 태어난다. 트라팔가 해전(1805년)에서 패배 후, 나폴레옹은 대륙봉쇄를 단행한다. 나폴레옹에 대적하여 영국은 해상을 봉쇄한다. 미국은 중립을 선언하며 모든 국가와 자유로운 교역을 요구한다. 그러나 영국은 미국상선을 나포까지 하면서 프랑스와 교역을 차단한다. 수입관세에 의존하던 미국 연방정부의 세수는 급감하고, 독립전쟁 당시 영국에 대한 적대감이 다시 달아오른다.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은 1812년 6월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드디어 캐나다를 침공한다.


언제나 전쟁비용이 이슈였다. 재무장관 갤러틴은 국채발행을 추진했으나, 1811년 제1차 중앙은행을 해산했기 때문에 채권 매각이 막막했다. 제1차 중앙은행을 인수한 스티븐 지라드가 채권을 매입해주어 한 숨 돌렸지만, 개인에 의존한 조달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영미전쟁(1812~1815)을 치르면서 미국은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다시 절감한다.

전쟁으로 인한 부채를 상환하고, 지폐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중앙은행이 필요했다. 자신의 임기 중에 1차 중앙은행을 해산했던 매디슨 대통령은 마침내 두 번째 중앙은행을 승인한다. 그렇지만 초창기 제2차 중앙은행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 1823년 니콜라스 비들이 총재로 부임한 이후, 중앙은행은 비로서 안정적인 신용과 통화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었다. 그 기반 위에 10년 동안 견실한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다.


이 무렵 강력한 중앙은행 반대자가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그는 바로 앤드류 잭슨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잭슨은 독학으로 변호사가 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그는 부동산사업을 하면서 채권자의 사기에 휘말려 고생한 경험이 있다. 은행에 대한 강한 혐오감은 이때 형성되었다. 이후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승리하여 영미전쟁의 영웅이 된 잭슨은 1828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어 백악관에 입성한다. 잭슨은 동부 지역이 아닌 서부 지역 출신의 첫 대통령이다. 그는 대중을 상대로 직접 유세를 벌여 당선된 최초의 대통령이다. 새로 편입된 서부의 주들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백인남성에게도 투표권을 주었다. 그의 당선은 토크밀이 목격한 바로 그 ‘대중 민주주의’의 승리였다.


잭슨은 자신의 인생 경험을 진리로 믿었고, 은행에 대한 그의 반감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는 금과 은 같은 정화만이 돈이며, 지폐와 신용장, 어음, 수표 등은 일종의 사기라고 믿었다. 그의 눈에는 은행은 이런 사기꾼들의 집합이며, 중앙은행은 부자와 은행가들의 대변자였다. 그를 지지하는 서민들은 은행이 금융시장을 조작하고 인플레를 조장한다고 믿었다. 결국 땅값을 급증시켜 대지주들만 이익을 본다고 생각했다. 잭슨은 이들의 지지를 업고 중앙은행에 독점권을 주지 않기로 했다. 잭슨은 직설적이며 자신의 신념에 투철한 인물이다. 그는 집권 후 은행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며, 중앙은행과 전면전을 벌인다.

1832년 미국 대선은 중앙은행 허가 연장이 최대이슈로 부상했다. 미국 역사에서 이를 은행전쟁(Bank War)이라 부른다. 비들 총재는 잭슨에게 투표 한 사람이었고, 대선을 앞두고 잭슨과 합리적 해결방안을 찾고자 했다. 그렇지만 잭슨은 중앙은행 허가 연장안에 끝까지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비들 총재는 의회를 압박하여 중앙은행 허가를 15년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잭슨 대통령은 이제 거부권으로 맞선다. 잭슨은 워싱턴에서 봉기를 일으킬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시위대들이 워싱턴에 입성하면 즉시 교수형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의회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결국 뒤집지 못했다.


그해 11월 선거에서 잭슨은 압승을 거뒀다. 중앙은행은 4년이나 기한이 남았지만 사실상 식물은행이 되어 버렸다. 잭슨은 재선 직후 중앙은행에 복수를 한다. 잭슨은 1834년 중앙은행에 예치한 연방예산을 빼내, 일반은행에 예치한다. 1836년 제2차 중앙은행은 펜실베이니아 주법에 따라 일반은행으로 전환된다. 잭슨은 퇴임 후 자신이 대통령으로 이룬 업적가운데 가장 큰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중앙은행을 죽여버린 것”이라 말한다. 그는 말하자면 신념에 따라 경제 민주주의를 실험한 것이다.


잭슨 실험의 후유증은 매우 심각했다. 제2차 중앙은행이 해산된 이듬해인 1837년 봄, 거품이 터졌다. 1837년 5월10일 뉴욕의 은행들은 지폐를 은이나 금으로 상환하는 것을 중단한다. 은행 파산으로 이어져 미국의 850개 은행 중 약 40%가 문을 닫았다. 심각한 경제난이 시작되어, 1838년1월에는 50만명의 미국인이 실업자였다. 부동산 가치는 폭락하고 수입도 급감했다.


물론 공황자체가 온전히 잭슨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다. 1837년 공황은 표면적으로는 미국 면화가격 폭락 사태에서 시작됐다. 면화 가격 폭락은 수천㎞ 떨어진 중국 청나라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아편을 금지했고, 이어 대중 무역수지에 빨간 불이 켜진 영국이 면화수입을 줄였기 때문이다. 얽히고 설킨 세계경제가 공황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경제는 정치와 같이 옳고 그름의 싸움이 아니다. 잭슨의 잘못은 정치처럼 경제를 다룬 것이다. 만약 제2차 중앙은행이 존재했다면, 당시 사람들의 삶은 그래도 덜 고단했을 수 있다.


미국은 중앙은행 없이 70여년간 지내다가, 1907년 금융위기를 겪은 후 중앙은행의 필요성에 합의한다. 1913년에 연방준비법을 제정해 마침내 중앙은행을 설립한다. 이 은행이 진화와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 연방준비제도로 이어지고 있다.


백영란 역사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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