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로 읽는 K정치] 유권자가 소비자란 비유
‘유권자=고객’의 은유가 부각하고 은폐하는 것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1일 서울 서대문구 커피전문점 SANMEAG에 마련된 북가좌제2동 제5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선거 때 유권자는 소비자와 같아요. 진지해지죠. 공약을 상품처럼 꼼꼼히 비교 분석해서, 누구를 투표해야(무엇을 구매해야) 삶에 도움이 될지 고민합니다.”
한 정치인의 말입니다. ‘유권자=고객’, ‘정치인=기업가’, ‘정치=산업’에 빗댄 겁니다. 정치인은 국민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 ‘공약’이란 상품을 시장에 내놓습니다. 소비자는 이를 꼼꼼히 비교해 찍을 후보를 정한다는 겁니다.
유권자를 소비자에 빗댄 수사들이 많습니다. ‘정책마켓’, ‘공약 세일즈’, ‘정책 라이브커머스’, ‘문재인1번가, 정책홈쇼핑’ 같은 표현이 예입니다. 정치적 용어에 시장의 언어를 붙였습니다. 지난 3·9 대선 때도 ‘안철수를 팝니다-철수마켓’ 같은 선거 캠페인이 많았습니다. 정치를 소비의 영역으로 본 겁니다.
하지만 ‘유권자=소비자’라는 ‘정치=산업’이라는 은유가 과연 엄밀하게 맞아떨어지는지, 이 은유가 부각하는 대신 은폐하고 호도하는 것은 없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권자를 고객, 소비자로 추켜세우는 것은 듣기 좋은 말입니다. ‘손님은 왕’이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유권자 지위가 ‘정치에 동원되는 객체’에서 ‘정치를 소비하는 주체’로 상승했다는 뜻입니다. 정치인이 고객의 선택받는 객체가 됐다는 것도 함의합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과연 기업인들처럼 시간을 다투며 경쟁하고, 고객을 만족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독과점을 하면 규제기관에 철퇴를 맞는지에 대해선 퀘스천 마크가 붙습니다. 정치가 그런 업종인지. 의원들이 의정활동에 있어서 경쟁의 절박함과 긴장감 속에 움직이고 있는지 미지수여서입니다.
“산업은 글로벌 경쟁입니다. ‘시간’이 중요해요. 그런데 이 시간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이에요. 필요한 법안은 빨리빨리 통과를 시켜줘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는 경쟁이 없어요. 산업도 정치의 논리로 보는 것 같습니다.”
반도체특별법(K칩스법) 통과가 지지부진하다며 한 교수가 비판했습니다. 시간을 관리하는 건 정치인들인데, 정치인들이 ‘글로벌 경쟁의 마인드’가 없어 법안 통과에 안일하게 대응한다는 겁니다.
실제 정치가 관여하는 ‘시간’의 영역은 꽤 많습니다. 군 복무 기간부터 시작해서, 연금을 수령할 나이, 대체공휴일 지정, 복지 혜택 수급 자격, 외국인 비자 만료 시효, 투표 연령, 대통령의 임기까지 모두 정치가 정합니다. 시간 역시 정치가 결정하는 희소한 재화인 겁니다.
하지만 급박한 법안 처리를 미루거나, 정쟁만을 일삼게 되면 정치가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려줘야 할 시간은 한없이 지연될 겁니다. 시간을 관리하는 정치가 실종됐을 때 그런 일이 발생합니다.
이 때문에 정말 유권자가 소비자로 비유될 수 있다면, 까다로운 소비자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인에 대한 리뷰도 철저히 쓰고 평점도 꼼꼼히 매겨서, 상품에 대한 옥석가리기를 하는 겁니다. 고객과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내놨던 상품이 부실하다면 책임을 묻고, 다른 선택지를 찾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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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해야 소비에 실패할 확률이 줄어들고, 정치인들이 조금 더 고객만족도가 높은 상품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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