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견꾼 찰스'의 英 국왕 등극…정치적 중립성 지킬까 [글로벌포커스]
장관들에게 보낸 '흑거미 편지' 논란
내각에 지나치게 개입…'참견꾼 왕자'
친환경 행보 속 유기농업체 운영 논란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70년 재위 기간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고 찰스 3세가 새 국왕으로 등극하면서 영국 정계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왕세자 시절부터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적극 개진해 온 찰스 3세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할 경우, 자칫 영국 왕실이 정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특히 영국 내 반이슬람 정서와 달리 종교적 차별을 반대하며 이슬람 단체들을 후원해온 찰스 3세의 행보는 영국 정부와도 일부 충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찰스 3세가 강력히 주장해온 친환경정책도 에너지 위기에 휩싸인 영국 국민들의 정서와 맞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찰스 3세가 여왕에 비해 매우 낮은 지지를 받고 등극한 만큼, 왕세자 시절 때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참견꾼 별명 안겨준 ‘흑거미 편지’ 논란
19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영국 정계 안팎에서 찰스 3세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온 여왕에 비해 정치 개입을 더 많이 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왕세자 시절부터 내각에 자신의 의견을 강력히 피력해온 만큼 국왕이 된 이상 영국 정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전망이다.
찰스 3세는 왕세자 시절인 2004년부터 ‘흑거미 편지(black spider memos)’라 불리는 친필 편지를 영국 내각 장관들에게 보내 농업과 도시계획, 건축, 교육,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흑거미 편지란 용어는 그가 친필 편지에 남긴 필체가 흑거미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다.
그는 2004년부터 당시 총리였던 블레어 전 총리를 비롯해 내각 각료들에게 친필 편지를 보냈다. 내각에 지나치게 깊숙이 개입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참견꾼 왕자(meddling prince)’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찰스 3세 본인은 국왕이 된 만큼 영국 헌법에 규정된 국왕의 정치적 중립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찰스 3세는 지난 9일 영국 국왕으로 공식 선포된 뒤 가진 대국민 연설에서 "그동안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자선단체와 각종 사회문제에 시간과 에너지를 더 이상 바칠 수 없다"며 "헌법의 원칙을 수호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친이슬람 행보 논란…반중 정서는 한목소리
찰스 3세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특히 그의 친이슬람 행보가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는 그동안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입국 제한과 차별을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유럽 내 각종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한 테러가 잇따르면서 영국 내 반이슬람 정서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옥스퍼드대학의 이슬람 연구센터와 함께 영국 내 이슬람 청소년들의 멘토링 프로그램인 ‘모자이크(Mosaic)’ 등 이슬람 공동체를 적극 후원해왔다. 지난 2015년에는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 출현 이후 영국 사회의 반이슬람 정서를 비판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그는 "영국 국교회 수장으로서 국왕의 역할은 모든 종교를 지키고 그들의 신앙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찰스 3세의 친이슬람 행보는 리즈 트러스 정권과 충돌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지난 6일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는 영국 이민정책을 이끄는 내무장관에 수엘라 브레이버먼 전 법무부 장관을 임명했다. 앞서 브레이버먼 장관은 영국 총리 경선에 출마해 "불법 이민자가 영국해협을 넘지 못하게 하겠다"며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이슬람교도 불법 이민자들의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반중 정서에 있어서는 영국정부와 한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CNN에 따르면 찰스 3세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달라이라마와의 친분을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친환경 전문가 자처…유기농업체 운영 논란도
찰스 3세를 둘러싼 또다른 논란의 핵심은 친환경정책과 관련된 행보다. 찰스 3세는 왕세자 시절부터 지구온난화 문제 등 환경 문제에 정부가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지난해 10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직접 참석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지구에 재앙이 된다"며 각국 정상들에게 적극적인 친환경정책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그러나 그의 친환경정책 행보가 단순히 개인 관심사가 아닌 본인이 운영 중인 유기농 식품업체의 홍보를 위한 것이란 논란도 나오고 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왕세자 때 받은 영지인 콘월 지역에서 1990년부터 유기농기법으로 재배한 식품과 포도주를 판매하는 업체인 ‘더치 오리지널스(Duchy Originals)’라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해당 기업은 400만달러(약 56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해당 사업을 시작한 이후 찰스 3세는 유기농법과 친환경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하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앞서 논란이 된 흑거미 편지의 내용 중에도 더치 오리지널스에 전문가를 파견해달라거나 기부를 해달라는 내용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더욱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여왕 비해 낮은 지지율…목소리 크게 줄일 수도
일각에서는 이러한 우려와 달리 찰스 3세가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보다 훨씬 낮은 지지율로 등극한 만큼, 정치적 목소리를 크게 줄일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 여론조사업체인 유고브가 지난 5월에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찰스 3세가 왕위 계승을 잘 수행할 것이란 응답자는 전체 39%에 그쳤다. 엘리자베스 2세가 기록한 77%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또한 전체 응답자 중 27%는 군주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해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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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헌법 및 왕실 전문가인 버논 보그다노 런던대 정치학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찰스 3세는 오랜 기간 왕세자로 재임하며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대중들이 정치적 메시지나 켐페인을 벌이는 군주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정치적 목소리보다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력을 높이고 문화나 예술 후원을 늘리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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