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간 세계 1.4억만 가구 시청한 '오징어 게임'
제74회 에미상서 황동혁·이정재 트로피 품어
변화한 위상, 美 진출로 이미 시작돼…OTT 타고 가속화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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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혁 감독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영화 ‘마이 파더(2007)’가 관객 90만 명 동원에 그쳤다. 차기작 불발로 이어져 생활고에 시달렸다. 은행 대출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도 절망에 빠져있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었다. 황 감독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평범한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사회 밑바닥을 구르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실감했다. 서바이벌 게임이 떠올랐다. ‘오징어 게임’이었다.


음지에서 나온 대본에 영화·방송계 반응은 시큰둥했다. 하나같이 허무맹랑한 판타지로 치부했다. 10년도 더 지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된 뒤 반응은 판이해졌다. ‘오징어 게임’은 지난해 9월 17일 공개돼 4주 동안 1억4200만 가구가 시청했다. 세계 곳곳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게임이 성행했고, 초록색 추리닝과 달고나 세트도 불티나게 팔렸다. 지난 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의회는 ‘오징어 게임의 날(9월 17일)’까지 선포했다.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작품을 북미 최고 권위의 대중문화 시상식이 놓칠 리 없다. ‘오징어 게임’은 제74회 에미상에서 열세 부문에 열네 명이 후보에 올랐다. 지난 4일(현지시간) 열린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상에선 게스트상(이유미)을 비롯해 시각효과(정재훈), 스턴트(임태훈), 프로덕션디자인(채경선) 등 네 부문 수상에 성공했다. 12일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선 황 감독이 감독상, 이정재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야말로 한국 콘텐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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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한 위상은 이미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로 감지됐다. 시작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중훈이 ‘아메리카 드래곤(1998)’으로 포문을 열고 장동건과 전지현이 각각 ‘워리어스 웨이(2010)’와 ‘블러드(2009)’에 출연했다. 비도 ‘닌자 어쌔신(2009)’ 주연을 꿰차며 활동 폭을 넓혔다. 반응은 하나같이 미지근했다.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개입된 배역과 안일한 이야기 전개로 매력을 드러내기 어려웠다.

악조건 속에서 이병헌은 꾸준한 노력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2009)'을 시작으로 '지.아이.조 2(2013)', '레드: 더 레전드(2013)', '미스컨덕트(2016)', '매그니피센트 7(2016)' 등에 출연했다. 하지만 국내처럼 연기력을 충분히 뽐낼 만한 배역을 만나진 못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흥행한 작품의 프리퀄 프로젝트 등에서 제안이 와도 거절하곤 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도래로 국경의 벽이 무너지면서 표현의 자유는 한층 확장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징어 게임’ 이정재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순간 실패자로 전락한 성기훈을 연기했다. 엄마·의붓아버지와 함께 미국에 정착하러 떠나게 된 자기 딸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되는 인물로, 직업과 가족을 점차 잃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대표한다.


움직임 하나하나는 도덕적 질문들을 내포한다. 오늘날 세계의 비인간적인 모습과 통제되지 않은 자본주의의 일탈, 끝나지 않은 악몽, 희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인간성이 활짝 피어나길 바라는 꿈 등이다. 프랑스 철학자 올리비에 딜리는 저서 ‘오징어 게임의 철학’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평행 우주 속에서 체험한 폭력은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겪는 폭력과 완전히 다를지 모른다. 세상 바깥에 있는 이 우주에서는 현실 세계에서 벗어날 기회가 동등해 보이고, 게임으로 되돌아오거나 말거나 할 기회도 항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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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는 최근 루카스필름이 제작하는 디즈니+의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 ‘애콜라이트(Acolyte)’에서 주인공을 연기하기로 했다. ‘오징어 게임’ 두 번째 시즌에서 출연료가 몇 배 이상 올랐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에게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마동석과 박서준은 각각 마블 시리즈인 ‘이터널스’와 ‘더 마블스’에 참여했다. ‘오징어 게임’으로 스타덤에 오른 정호연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드라마 ‘디스클레이머’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더 가버니스’에도 주연급으로 섭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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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우리 콘텐츠를 향한 시선의 변화를 확실히 체감하고 있다. 그 영향력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면서 이렇게 조언했다. "정말 중요하면서도 조심해야 하는 시기다. 이런 때에 질보다 양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면 또 다른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얘기지만 정말 신중하게 좋은 작품으로 승부하는 방법이 정답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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