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통한 선동은 증오 정치 악순환 낳아
합리적 비판과 조작된 선동은 구분돼야
[아시아경제 ] 윤석열 대통령이 마트에서 아오리 사과를 보고는 "이게 빨개지는 거냐"고 물었다. 윤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이 아오리가 청사과인 줄도 모르는 대통령을 온종일 조롱하며 비난했다. 어느 시인은 페이스북에서 "아오리가 가오리냐? 양념하고 빨개지게? 국민살이 조낸 숨차다"고 야유했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며 조롱의 쾌감을 공유했다.
아오리는 빨개지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 검색해 보았다. 시간이 지나 숙성되면 빨개진다는 설명들이 있었다. 실제로 빨갛게 된 아오리 사과의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윤 대통령의 말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옆에 나란히 서있던 여성을 둘러싼 소동도 있었다. "김 여사와 봉하마을에 같이 갔던 그 측근 아니냐" "비선과 저렇게 대놓고 다니냐"는 비난이 쇄도했다. 그런 비난을 퍼부은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한 근거는 덩치가 큰 그 여성의 체형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여성은 김 여사의 측근이 아니라 독립유공자의 증손녀였다.
선거들도 진즉에 끝났건만, 사실이 아닌 ‘괴담’ 성격의 얘기를 갖고 큰일이라도 난 듯이 떠들썩한 광경들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렇게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면 많은 매체들도 선정적인 제목을 단 온라인 기사를 쏟아낸다. 나중에 사실무근임이 밝혀져도 괴담의 효과는 이미 거둘 만큼 거두게 된다.
우리는 괴담이 정국을 좌지우지했던 흑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2008년에는 ‘광우병괴담’의 영향으로 촛불시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렸다는 국민은 한 명도 없었다. 우리는 식당에서도, 집에서도 미국산 소고기를 가리지 않고 익숙하게 먹는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로는 ‘고의 침몰설’이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8년 동안 9차례에 걸친 국가기관의 조사와 수사를 거치면서 ‘고의침몰설’은 입증 불가능한 음모론으로 판명됐다.
과거에는 보수정권들이 위기 상황만 되면 용공조작 같은 음모를 통해 위기 탈출을 시도하곤 했다. 사건 조작을 통해 혹세무민하는 행태는 보수 정치세력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더불어민주당 쪽과 그 지지층 일각에서 허위와 조작을 통한 선동을 무기로 삼는 모습이 흔해졌다. 지난 선거 때 등장했던 ‘생태탕’이나 ‘쥴리’ 같은 괴담들도 그 가운데 일부였다.
윤석열 정부는 민심과 어긋난 많은 잘못을 범했다. 100일 만에 지지율을 20%대로 추락시킨 실정에 대해서는 준엄한 비판을 가해야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허위 사실을 조작하고 유포해 정권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를 확산시키는 일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 사실에 근거하면 정당한 비판이 되고, 거짓을 꾸며내면 비열한 선동이 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샐리 콘은 ‘왜 반대편을 증오하는가’라는 책에서 "다른 사람들의 인간성을 교묘하게 말살하면서 우리 자신은 경건한 척 높이려는 우월성이 바로 증오의 근본적인 뿌리"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언제나 옳고 정의롭고, 그들은 무조건 틀리고 나쁘다는 집단적 우월 의식이 그런 증오의 정치를 낳는다.
합리와 이성에 기초한 비판은 상대의 귀를 열게 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증오를 앞세운 선동은 상대의 귀를 닫게 만들고 ‘증오의 복수’를 낳게 된다. 그래서 우리를 끝없는 증오 정치의 악순환 속에 가두어 버린다. ‘비판’과 ‘괴담’을 가려내는 일이 시민들의 몫이 된 지 오래다. 진정으로 ‘깨어있는 시민’이란 그것을 가려 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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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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