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시사컬처] 최악의 출근길에 든 생각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시사컬처] 최악의 출근길에 든 생각
AD
원본보기 아이콘


얼마 전에 내린 비가 기상관측상 최악의 폭우였다고 한다.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마비되었고 특히 더 많은 비가 쏟아진 강남 일대는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진풍경이 펼쳐졌다. 평소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길인데 몇 시간씩 걸렸다는 출퇴근 경험담이 속출했다. 필자 역시 8월9일 아침 출근길을 꽤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평소에는 차를 몰고 출근하지만, 시내 곳곳이 범람하고 주요 도로들이 통제되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전날부터 접했기에 지하철로 출근하자고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가뜩이나 출퇴근 시간에 미어터지기로 악명 높은 9호선이지만 늦지 않게 출근시켜주는 것만 해도 감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하철도 버티지 못했다. 9호선 강남 인근 노선이 운행 중단됐다는 사실을 역으로 가는 길에 뉴스를 훑어보다가 알았다. 비 때문에 지하철 운행이 중단된 일은 내 기억으로 처음이었기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여전히 거세게 퍼붓는 빗줄기를 보자 방송 시간에 늦을 지도 모르겠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지만 침수된 도로가 많아 필자의 직장으로 가는 노선은 운행경로가 임시변경된 상태였고 통제구역은 시시각각 늘어나고 있었다. 버스도 믿을 수 없었다. 택시와 자차를 고민하다가 결국 집으로 달려가 시동을 걸었다.

긴 출근시간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이례적으로 길고 고된 출근길이지만 매일 2시간 이상을 출퇴근에 써야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을 텐데. 직주근접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 문제는 부동산 정책의 출발점이기도 한데, 신규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는 방식으로 수평적 확장과 수직적 확장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은 지, 어느 쪽에 비중을 더 둬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한다. 도시 주변의 자연녹지를 신도시로 만드는 방식이 수평적 확장이고 도심이나 기존 주택지를 고밀도로 개발하는 방식이 수직적 확장이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옳지 않다면 냉정하게 양쪽의 장단점을 비교해야 하는데 정치적 구호만 난무할 뿐 진지한 논의가 충분하지 않았다.


재택근무의 효용에 대해서도 평소와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재택근무가 확산되면 양질의 일자리, 즉 돈 많이 받고 정년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줄어들 거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번에 생각이 달라졌다. 질이 떨어지더라도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쪽이 낫지 않을까? 높은 연봉을 받는 5명이 직장에 출근해야 처리할 수 있는 일을 평균 연봉을 줄여 고용한 7명이 재택근무로 해낼 수 있다면, 어떤 고용방식이 더 나을까? 이것 역시 논쟁이 뜨거워질, 그러므로 충분히 토론해야 할 과제다.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을 뛰어다니다가 차를 몰고 난리통에 뛰어들었던 그날, 결국 방송에 늦었다. 생방송이 아니라 녹음스케줄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비 노래를 선곡해야겠다 싶어서 몇 곡의 후보를 적어 보았다. 금과 은의 원곡을 나얼이 다시 부른 '빗속을 둘이서', 싸이의 '비오니까',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 정도가 유력 후보였는데 결국 비 노래는 틀지 않았다. 대신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를 골랐다. 고되고 지루한 길을 매일 묵묵히 견뎌내는 장거리 출퇴근 직장인들을 위해.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이재익 소설가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회에 늘어선 '돌아와요 한동훈' 화환 …홍준표 "특검 준비나 해라" 의사출신 당선인 이주영·한지아…"증원 초점 안돼" VS "정원 확대는 필요"

    #국내이슈

  •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수리비 불만에 아이폰 박살 낸 남성 배우…"애플 움직인 당신이 영웅" 전기톱 든 '괴짜 대통령'…SNS로 여자친구와 이별 발표

    #해외이슈

  • [포토] 세종대왕동상 봄맞이 세척 [이미지 다이어리] 짧아진 봄, 꽃놀이 대신 물놀이 [포토] 만개한 여의도 윤중로 벚꽃

    #포토PICK

  •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부르마 몰던 차, 전기모델 국내 들어온다…르노 신차라인 살펴보니 [포토] 3세대 신형 파나메라 국내 공식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전환점에 선 중동의 '그림자 전쟁'   [뉴스속 용어]조국혁신당 '사회권' 공약 [뉴스속 용어]AI 주도권 꿰찼다, ‘팹4’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