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여행만리]켜켜이 쌓인 역사, 천년의 시간을 거닐다
홍성 '홍주 천년길' 여정-고즈넉한 홍주성을 따라 천년 역사를 보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 충남 홍성은 고려 현종시대인 1018년 홍주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충남 서부 해안 내포지역 22개 군현을 관할하던 중심지였습니다. 현재는 충청남도 도청이 홍성에 있으니 홍성의 역사 앞에 1천 년을 붙이는 것 은 틀린말이 아닐것입니다. 홍성은 예부터 서해 바다가 물길을 따라 내륙 깊숙이 파고든 지형이라 온갖 물산이 넘쳐나셨습니다. 시장 한 귀퉁이 벽면을 장식한 보부상 그림은 당시 홍성장의 위상을 대변합니다. 이런 홍성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길이 있습니다. ‘홍주성 천년길’이 그것입니다. 8km에 이르는 길을 걷다보면 홍성의 천년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홍주 사람들의 삶과 애환의 흔적이 물씬 풍기는 전통시장을 비롯해 홍주의사총, 매봉재, 홍주성, 전통시장으로 되돌아오는 길입니다. 정겹고 활기찬 풍경을 차례로 만나다 보면 홍성의 흘러간 역사뿐 아니라 현재의 모습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읍내에서 서쪽으로 약 4km 떨어진 곳에 천년의 땅을 조망할 수 있는 백월산(해발 394m)이 있습니다. 웅장하거나 높지는 않지만, 정상에 오르면 홍성읍과 서해의 천수만이 그림같이 펼쳐져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듭니다.
‘홍주성 천년길’은 접근성이 좋다. 홍성역에서 500m 내려와 만나는 고암공원에서 천년여행길이 시작된다. 홍성버스터미널은 고암공원과 바로 이웃해 있다. 공원에서 도로를 따라 걸으면 장군상오거리에 닿는다. 큰 칼을 쥐고 어딘가를 가리키는 김좌진 장군의 동상이 위엄이 넘친다.
장군상 오거리 부근에 홍성전통시장이 있다. 홍성은 읍 단위치고 시장이 꽤 번성한 곳이다. 전통시장 외에 상설시장과 명동거리(젊은이들을 상대로 하는 패션 상점이 몰려 있다)가 따로 있다. 평소 한산하던 홍성전통시장도 장날(끝자리 1, 6일)이면 골목마다 발 디딜 틈 없이 난전이 들어선다. 꽈배기, 호떡과 찐빵 등 주전부리부터 생활용품까지 길게 줄이 선다. 홍성은 예부터 서해 바다가 물길을 따라 내륙 깊숙이 파고든 지형이라 온갖 물산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3대에 걸쳐 100년을 훌쩍 넘긴 대장간이다. 대장간 주인장이 의자에 앉아 시장거리를 내다보고 있다. 쇳덩이를 두드릴 때 쓰는 모루가 반질반질하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했더니 그러라며 일어선다. 주인장을 모델로 찍겠다고 하니 “밭에 가야하는데...”라며 마지못해 의자에 다시 앉았다. 요즘은 일거리가 많이 없어 논과 밭일도 하신단다. 대장간은 주로 간단한 농기구를 제작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고객들이 원하는 맞춤상품도 만들어 낸다.
대장간을 나서면 70년 전통의 소머리국밥집이 시선을 끈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여름날이지만 펄펄 끓어 넘치는 가마솥 앞에서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말아 내는 주인아줌마의 솜씨가 국밥의 맛에 신뢰를 더한다.
다시 길로 나선다. 시장에서 홍성천을 건너면 주택가 어귀에 오관리 당간지주가 있다. 높이 4.7m로 제법 큰 편인데 고려시대 사찰인 미륵사 당간지주로 추정하고 있다. 두 개의 돌기둥이 삐죽 솟은 모습에 홍성 사람들은 장군 젓가락이라고도 부른다.
홍주의사총으로 걸음을 옮긴다.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일어선 의병들은 1906년 3월 홍주 읍성을 공격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전열을 정비한 의병은 지금의 부여군 내산면, 서천, 비인, 남포, 홍주 삼신당리에서 일본군과 싸워 이긴다. 그리고 드디어 5월 20일 홍주성을 탈환한다. 하지만 일본군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홍주성을 내줘야 했다. 이 전투에서 죽은 수많은 의병을 추모한다는 의미에서 구백의총이라 부르다, 2001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하면서 홍주의사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의병기념탑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간다. 바람이 지나는 넓은 언덕길이다. 언덕 넓은 풀밭 오솔길이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 매봉재로 향한다. 숲이 좋은 낮은 산, 매봉재는 홍성에서 홍성 향교를 지나 덕산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옛날에는 성황당이 있는 좁은 고갯길이었는데 지금은 길이 낮아지고 넓어졌다.
매봉재를 지난 발걸음은 어느새 홍주읍성 성곽 앞에 도착했다. 홍주성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 토성으로 쌓았다가, 조선 문종 1년(1451) 석성으로 완공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부가 허물어져 1,772m의 성벽 가운데 현재는 약 810m만 남은 상태다.
군청 외벽을 지나 남쪽으로 비스듬히 휘어지는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이곳이 도심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호젓하고 고성(古城)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성벽은 홍주읍성 동쪽 중간쯤에서 끊어진다. 이곳부터 성곽 내부로 들어간다. 홍주성 안에는 홍주성 비석군, 병오항일의병기념비, 홍주성토성유적, 홍주성역사관 등이 있다.
우물과 죄인을 가두던 홍주 옥이 눈에 들어왔다. 1894년 동학농민 봉기 때에는 많은 동학도들이, 1895년 을미홍주의병 때에는 김복한 선생을 비롯한 의병 지도부 23명이 홍주 옥에 갇히기도 했다. 또 충청도 최초의 순교자인 원시장 베드로가 동사로 순교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홍주성역사관 건너편에 홍주아문이 있다. 홍주아문은 홍주성 관아의 외삼문이었다. 홍주아문사이로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고려 공민왕(1351~1374년 재위) 때 홍주가 목(牧)으로 승격한 것을 기념해 심었다는 전설을 근거로 한다면 수령 650년 정도로 추정된다.
군청 뒤편 여하정에도 느티나무가 있다. 여하정은 홍주목사가 휴식을 취하던 정자로,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마치 여하정을 보호하려는 듯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홍주아문에서 큰길로 나오면 홍주성의 정문이자 동문인 조양문(朝陽門)이 성벽과 이어지지 못하고 회전 교차로에 갇혀 있다. 뚝 떨어져있는 정문이 아니라 성벽과 이어져 완성된 홍주성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홍성천 다리를 건너면 다시 전통시장으로 들어선다. 천년여행길도 거의 마무리된다. 3~4시간여 걸린 여정에 허기가 몰려온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밥 생각이 절로난다. 장터에서 국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먹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한다.
홍성읍 서쪽 약 4km 떨어진 곳에 천년 땅을 조망하기 좋은 산이 있다. 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이 홍성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산이라고 했다. 바로 백월산이다.
웅장하거나 높지는 않지만, 산 정상에 오르면 홍성읍과 서해의 천수만이 그림같이 펼쳐져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든다. 무엇보다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니 일몰시간에 맞추어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차로 정상부근까지 갈 수 있는 것도 큰매력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정상 전망대를 향해 오르면 큰 강아지형상을 한 바위를 만난다. 안내문에는 코끼리바위로 적혀있다. 어디를 봐도 코끼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5분여 오르자 사방이 시원하게 틔인 전망대가 나왔다. 오른쪽으로 서해를 붉게 물들이며 해가 넘어가고 있다. 왼쪽으로는 충남도청을 비롯해 좀 전 지나온 천년여행길이 아스라히 내려다보인다.
홍성=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
◇여행메모
△가는길=홍성은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 당진대전고속도로 예산수덕사IC에서 가깝다. 서울 용산역에서 홍성역까지 장항선 열차가 운행한다.
△먹거리=홍성은 전국 최대의 우시장이 있는 곳으로 한우와, 육사시미, 소고기국밥 등이 유명하다. 최근 TV예능프로그램에도 소개된 40년 전통의 흥남만두(사진)는 속재료를 당면이 아닌 채소로 버무려 기존 만두와는 다른 식감을 자랑한다. 봄철에는 남당항 대하와 주꾸미 축제가 이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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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용봉산, 오서산, 남당항, 죽도, 궁리포구, 김좌진장군 생가지, 만해 생가, 이응노미술관, 홍성, 광천우시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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