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부장 일꾼이 없다…中企는 아사 직전[테크전쟁, 선진국의 탄생]
반도체 인력 부족 비율…중소규모 90% 이상
R&D 지원에도 인력난에 반도체 소부장 기업 기술개발 차질
20·30 핵심 연구인력 대기업·해외로 유출
中企업계 "기존 인력도 못 지키는데 수년 후 인재 양성 배부른 소리"
고용 보조금 확대 지원해 핵심 인력 장기 재직 유도해야
[아시아경제 곽민재 기자]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반도체 부품 기업 A사는 코스닥 상장사로 매출액 600억원 안팎의 탄탄한 기업이다. 미국과 일본이 독점하던 고청정 반도체용 강관을 국내 최초로 국산화해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대구경 강관에서부터 지형에 따라 굴곡을 만드는 피팅, 가스를 차단하는 밸브, 압력을 조절하는 레귤레이터, 순도를 높이는 필터 등을 모두 생산해 반도체 팹(fab)계의 모세혈관으로 불린다.
이 회사는 치열한 경쟁 끝에 기술력을 인정받아 산업통상자원부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으뜸기업’에 선정돼 4년간 약 120억원을 지원받게 됐다. 하지만 정작 이를 수행할 인력이 절반 정도에 불과해 기술개발 계획이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20·30대 핵심 연구인력 6명 정도가 반도체 대기업과 중견기업으로 이직했다"며 "내부적으로 연구개발 인력에 임금의 10~20% 차등을 두고 정부 과제 수행 시 인센티브도 지급하지만 채용 공고를 내도 몇 달째 이력서가 들어오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대기업의 인력난이 ‘가뭄’ 수준이라면 중소기업은 ‘아사’(굶어 죽음) 직전이다. 실력과 경험을 쌓은 핵심 인력은 대기업과 해외로 유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로부터 연구개발(R&D) 예산을 따와도 정작 이를 수행할 인력이 부족해 개발에 차질을 겪는 기업이 늘고 있다.
반도체 소부장 기업의 인력난은 통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국내 반도체 관련 업체 중 인력 부족을 겪는 기업을 규모별로 보면 90%가 중소기업이다. 반도체 분야 전체 부족 인력(1621명) 중 중소규모(10~299인)가 1463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이마저도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분석한 2년 전 수치다. 그 사이 활발한 투자가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부족 인력은 더 늘어났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R&D 예산을 지원해도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축적하기 어렵다.
경기도 용인시의 반도체 장비업체 B사는 인력 부족으로 상당한 일거리를 외주로 돌렸다. 반도체 모니터링 센서 분야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이 회사는 최근 관련 인력 채용을 위해 성과급 범위를 연봉의 40%까지 늘리고 헤드헌터를 통해 인력을 수소문했지만 끝내 원하는 사람을 뽑지 못했다. 이 회사 사장은 "반도체 중소기업의 기술 수준이 높아져 고급인력이 필요하지만, 인력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외부 전문가나 산학협력을 통해 외주를 주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우리가 가진 기술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지만, 외주 비중이 높다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나타난다"고 했다.
대통령이 연일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부가 관련 인재 양성에도 속도를 내고 있지만 중소기업에겐 이마저도 배부른 소리다. 기존에 보유한 핵심 인력도 지키지 못하는 실정이라 수년 후 길러질 전공 인원 확대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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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도체 산업이 유망함에도 중소기업은 근로조건이나 작업환경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우수 인력을 유지·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대기업에 비해 지급여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고용 보조금을 한시적으로 확대 지원하는 등 제도 보완을 통해 핵심 반도체 인력의 장기 재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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