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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96만대에서 41만대로…‘경유차는 어떻게 몰락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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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차 전체 등록대수 6년 만 반토막
요소수 대란, 경유값 폭등 영향 미쳐
전문가 "경유차 당장 없애는 건 어려워"

(사진=연합뉴스) 지난 23일 서울의 한 주차장에 관광버스 등 경유차량이 서 있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기준 전국평균 경유 가격은 L(리터)당 1997.95원으로 휘발유 판매 가격 1987.94원보다 비싸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3일 서울의 한 주차장에 관광버스 등 경유차량이 서 있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기준 전국평균 경유 가격은 L(리터)당 1997.95원으로 휘발유 판매 가격 1987.94원보다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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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서희 인턴기자] 최근 경유차가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하다. 2015년 96만대로 전체 등록대수의 절반을 넘어섰던 경유차는 빠르게 추락해 지난해에 41만대까지 떨어졌다. 불과 6년 만에 57%가 감소한 셈이다. 한때 ‘클린 디젤’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불티나게 팔리던 경유차는 어쩌다 몰락했을까. 경유차의 일대기를 돌아봤다.


◆ 친환경 정책 달고 씽씽 달린 경유차, 미세먼지에 급제동

국내에서 경유 승용차는 2005년에 처음 허용됐다. 당시에 경유차는 버스나 트럭 같은 상용차에 한정됐었는데, 경유차가 내뿜는 매연이 질소산화물을 포함한 대기 오염 물질을 과다 배출한다는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와 자동차 업계, 그리고 환경부와 산업자원부는 경유 승용차 시판을 놓고 팽팽하게 맞섰다.


경유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꿔준 건 이명박 정부의 ‘클린 디젤’ 정책이었다. 클린 디젤이란 독일 자동차회사가 디젤 엔진이 휘발유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가량 적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어낸 신조어였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클린 디젤이란 용어를 차용해 디젤 자동차를 친환경 자동차로 분류하고, 디젤차 운전자에게 주차료와 혼잡통행료 감면, 환경개선부담금 면제 등 다양한 세제 혜택을 줬다. 휘발유차에 비해 연비 높고, 힘 좋고, 친환경적이기까지 한 경유차는 정부 정책까지 등에 업으며 훨훨 날았다. 2005년 36%였던 국내 경유차 비율은 2014년 43%까지 뛰었다.


경유차의 하락세가 시작된 건 불과 10년 뒤였다. 2010년대 후반, 고농도 미세먼지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다. 전문가들은 경유차가 배출하는 질소산화물(NOx)이 초미세먼지를 악화하는 주범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10년간 이어온 클린 디젤 정책을 폐기하고, 대체 차종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2030년까지 공공부문에서 경유차를 제로화한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2015년에 발생한 폭스바겐 배출 가스 조작 사건과 2018년에 일어난 BMW 화재 사건 등도 경유차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떨어뜨린 요인 중 하나였다. ‘클린 디젤’이란 구호가 당초 새빨간 거짓말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된 소비자들은 경유차에 서서히 등을 돌렸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1월 3일 경기 시흥의 한 주유소에 요소수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1월 3일 경기 시흥의 한 주유소에 요소수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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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소수 대란에 경유값 폭등까지…“이제 경유차 탈 이유가 없다”


이때까지만 해도 환경성보다 경제성을 우선한 일부 소비자는 경유차를 이용했다. 그러나 2021년, 중국산 수입 중단으로 일명 ‘요소수 대란’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더 급박하게 변했다. 요소수는 디젤차가 내뿜는 질소산화물을 물과 질소로 분해해 환경 오염을 줄여주는 수용액이다. 국내에선 2019년부터 요소수를 사용하는 선택적환원촉매장치(SCR) 장착이 모든 디젤 차량에 의무화됐다.


경유차 운전자에게 안정적인 요소수 공급은 필수적이다. 요소수가 부족하면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출력이 65%까지 떨어져 주행에 영향을 미치는 탓이다. 지난해 발생한 요소수 품귀 현상은 요소수 제작의 97%를 중국에 의존하는 국내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소비자들은 언제든 또다시 불편함을 겪을 수 있음을 알게 됐고, 요소수를 주입하지 않는 차종으로 관심을 돌렸다. 서울에서 10년간 기아차 대리점을 운영한 A씨는 “요소수 때문에 한창 난리 난 이후로 기존에 디젤차 운전하시는 분들도 가솔린이나 하이브리드차를 많이 찾으러 오신다”면서 “이전과 비교하면 디젤차 인기가 확실히 식었다”고 말했다.


올해 러시아 전쟁으로 폭등한 경유값도 ‘경유차 몰락’에 불을 지폈다. 높은 연비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유값으로 인한 경제성은 디젤차의 큰 장점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생한 석유제품 수급난과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나타난 경유 재고 부족 현상은 그나마 남아있던 경유차의 장점마저 퇴색시켜 버리고 말았다.


2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기준 전국 주유소의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L당 2000.93원이다. 국내 경유 가격이 2000원을 넘어선 건 사상 처음이다. 같은 날 오후 기준 전국 평균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경유보다 낮은 L당 1994.77원이었다. 경유 가격은 이미 지난 11일 이후로 휘발유 가격을 넘어섰다. ‘휘발유보다 저렴한 경유’도 옛말이 돼버린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디젤차를 끌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기도에서 폐차 서비스점을 운영하는 B씨는 “요즘 중고차 가격이 많이 올라서 폐차 문의가 줄어든 상황임에도 디젤차 폐차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면서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경유값이 내려갈 기미가 안 보여서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로 바꾼다고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소비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기대감과 체념이 동시에 나오는 모양새다. 한 네티즌은 “디젤차의 입지가 줄었다기보다 국제 유가가 올라서 잠시 영향을 받는 것”이라면서 “어차피 국제 유가는 오르락내리락하므로 다시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면 디젤차의 경제성이 살아날 것”이라고 적었다. 다른 네티즌은 “경유차 타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인데, 요새는 가득 주유하면 기본 13만원은 깨진다”면서 “연비가 좋은 편이라 아직 타고 있긴 하지만 다음 차는 디젤차를 고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이 2026년까지 전기차 글로벌 연간 판매 목표량 170만대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이 2026년까지 전기차 글로벌 연간 판매 목표량 170만대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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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경유차 당장 없애는 건 불가능, 정책적 지원 필요”


경유차가 만든 공백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가 빠르게 메꾸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4월 친환경차(하이브리드ㆍ전기차ㆍ플러그인하이브리드ㆍ수소차)의 잠정 판매 대수는 12만6940대로 전년 동기(9만3937대)와 비교해 35.1% 증가했다. 전체 판매 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6%로 전년 동기(15.8%) 대비 8.8%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내연기관차의 비중은 꾸준히 감소했다. 올해 1~4월 내연기관차의 판매 대수는 38만9099대로 높았지만, 전체 판매 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5.4%로 전년 동기 84.2%와 비교해 1년 만에 10%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친환경차의 인기엔 정부의 ‘탄소중립’(온실가스 흡수량을 늘려 배출량을 0으로 상쇄하는 개념)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 국내 수송 부문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2018년 기준으로 9810만t이다. 한국 총배출량의 13.5%에 달한다. 이를 줄이지 않고선 2050년까지 탄소중립에 도달한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2023년 4월부터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경유를 쓰는 소형 택배화물 차량의 신규 등록을 금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경유차를 없애려는 정부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대차의 ‘포터’와 기아차의 ‘봉고’처럼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생계형 상용차의 경우, 여전히 경유차 비중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박종건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전임교수는 “디젤차가 현재는 미움을 받고 있지만, 당장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생계형 차량은 디젤차 비율이 높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친환경 자동차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정책을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 교수는 “전기차가 겉으로 보기엔 친환경적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는 주로 석탄ㆍ석유ㆍ가스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오히려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크다”면서 “현재는 정부가 친환경차라며 여러 보조금도 지급하고, 전기차 구매를 권장하지만 또 언제, 어떻게 노선을 바꿀지 모른다. 전기값이 오르거나 정부 보조금이 없어지면 전기차 구매자는 하루아침에 애물단지를 안게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해 7월, 현대차와 기아차는 2024년부터 현대 포터와 기아 봉고의 경유차 생산라인을 없애고 그 대신 전기와 액화석유가스(LPG) 차량 생산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서희 인턴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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