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다이어리]"더 이상 안된다" 지하철서 노숙자 몰아내는 뉴욕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더 이상 담배도, 마약도, 잠 자는 것도 안됩니다. 더 이상 지하철에서 바베큐를 굽지도 마세요. 더 이상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 없습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로어 맨해튼 지역의 풀턴스트리트역에서 기자회견에 나선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의 어조는 단호했다. 경찰 출신인 애덤스 시장은 더 이상 지하철 내에서 담배를 피고 마약을 하고 잠 자는 노숙자들을 그냥 두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며 "메트로카드(지하철카드)를 긁고, 차량을 타고, 목적지에서 내리라"고 강조했다. 뉴욕경찰(NYPD)은 다음 주부터 이 같은 이용 수칙을 어기는 탑승자들을 엄격히 단속하게 된다.
◆뉴욕, 지하철 안전강화 대책 발표한 까닭
왜 갓 취임한 뉴욕 시장이 지하철 역사에서 대대적으로 '지하철 안전강화 대책' 기자회견을 열면서까지 노숙자 몰아내기에 나섰을까. 이는 최근 뉴요커들이 느끼는 지하철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걸 보여준다. 이날 애덤스 시장이 언급한 지하철 이용 수칙은 사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지하철 내에서 흡연과 약물 복용을 하지 말 것, 1인 1석 이상 점거하고 누워서 자지 말 것, 바베큐를 굽는 등의 행동도 하지 말 것, 다른 승객들을 대상으로 공격성을 보이지 말 것.
하지만 맨해튼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면 이 같은 모습들을 꽤 자주 마주하게 된다. 3번에 1번 꼴은 열차 내에서 4~5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자는 노숙자를 만나곤 한다. 가끔은 바닥에서 자고 있는 이들도 있다. 가끔은 탑승객들에게 다가와 "1달러만 달라, 쿼터라도 달라"고 말을 걸거나 F로 시작되는 욕설을 뱉으며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하는 이들도 마주 한다. 그럴 때마다 조심스럽게 자리를 피하곤 하지만 지하철에서 내릴 때까지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다. 자칫 '날 무시하느냐'고 공격적으로 나올 수도 있는 탓이다.
지하철 내 중범죄도 급증했다. 지난달 타임스스퀘어역 플랫폼에서 아시아계 여성 미셸 고가 정신이상 노숙자에 의해 선로로 떠밀려 사망한 사건은 현지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비슷한 사건이 로어 맨해튼 지역에서 시도됐다. 발표 하루 전인 지난 17일에도 맨해튼 이스트빌리지 지역의 지하철 역에서 한 20대 남성이 노숙자로 추정되는 이에 의해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차이나타운의 한 아파트에서 한국계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아사마드 내시(25) 역시 노숙자로 뉴욕 지하철역에서 수차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는 인물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뉴요커들을 두렵게 만드는 건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날 애덤스 시장은 "지하철은 뉴욕의 생명선"이라며 최근 범죄가 늘어난 이유로 "팬데믹으로 노숙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팬데믹 이후 급증한 전철 범죄의 상당수는 노숙자나 정신이상자에 의해 저질러 진 것으로 파악되지만, 이들에 대한 관리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약 1600명의 노숙자가 뉴욕 지하철을 오가며 사실상 거주하고 있다고 추산한다.
최근 맨해튼 유니온스퀘어역에서 칼로 공격 당한 케빈 영은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지하철 범죄는 통제 불능 상태"라고 말했다. 전직 NYPD이자 범죄학 교수인 마이클 알카자르는 "범죄자들에게 있어 지하철은 표적이 많고, 적발을 피하는 것도 쉽다"고 언급했다. NYPD에 따르면 지난해 뉴욕 지하철에서 발생한 중범죄는 총 461건에 달한다. 살인사건은 총 8건으로 25년 만에 최고치다. 폭행 중범죄는 2019년보다 25% 늘었고, 선로 위로 다른 사람을 미는 사건은 20건에서 30건으로 증가했다.
◆애덤스 시장 "사람 아닌, 문제를 체포하는 것"
애덤스 시장은 그가 공개한 지하철 안전 강화 계획이 "사람들을 체포하는 것"이 아닌 "문제를 체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 주부터 경찰은 지하철 내 약물복용과 흡연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지하철 좌석에 누워 자는 노숙자들을 끌어낼 예정이다. 정신질환이나 약물복용 등의 문제를 지닌 노숙자들에게 정신건강 서비스, 영구 주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이번 지하철 안전계획에 포함됐다.
이를 위해 경찰은 물론 정신건강 전문가, 사회복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팀이 투입된다. 시 전역에 걸쳐 최소 30개 팀이 배치되는데 특히 범죄 발생 빈도가 높거나 이용객이 많은 지역에 집중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정신건강 전문가에게는 노숙자들을 진단해 본인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한다. 앞서 뉴욕시는 관련 전문가들을 모집하기 위한 공고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뉴욕시는 시정부, 주정부 기관의 고위급 관계자들이 매주 지하철 안전대책 회의도 진행해 즉각적인 대응책 마련에도 나설 것이라고 확인했다. 키샨트 시웰 NYPD 국장은 "승객 수가 증가하거나 범죄 신고가 접수된 역, 지하철 노선을 중심으로 할 것"이라며 "목표는 범죄를 줄이고 예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 시웰 국장 등 관련 책임자들이 총출동했다.
애덤스 시장은 이번 대책을 통해 지하철 공공안전을 회복함으로써 "팬데믹 이후 위축된 뉴욕에 활기를 되찾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집이 없는 사람들이 지하철에 살게 두는 것은 비인간적이다. 승객들과 대중교통 종사자들 역시 깨끗하고 질서있는 안전한 환경을 누릴 자격이 있다"면서 "점점 커져가는 이 문제에서 더 이상 눈을 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람들이 지하철 이용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한다"면서 "우리는 그러한 두려움이 더는 뉴욕의 현실이 되지 않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현지 언론들은 이날 공개된 계획에 세부사항, 일정 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노숙자를위한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시정부, 주정부 차원의 정신건강, 주거 지원서비스를 환영하면서도 "과거에 실패한 정책을 반복한다고해서 노숙자들이 지하철에 누워있는 고통을 끝내진 못할것"이라고 꼬집었다. 노숙자 등에게 지원할 정신건강, 주거 서비스는 만성적으로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대책이 정신질환자를 무조건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도시정의센터의 피터 말반은 노숙자들을 지하철 밖으로 무조건 끌어내는 것이 "불법적이고 범죄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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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가 대대적인 지하철 안전강화 대책을 발표한 이날 오후, 맨해튼 내 지하철 플랫폼에는 평소와 달리 역 마다 2명 이상의 직원과 경찰들이 배치돼 있는 모습들이 확인됐다. 미셸 고가 숨진 타임스스퀘어역을 거쳐 퇴근 중이던 한 아시안 여성은 "이번 대책만으로 지하철 안전이 회복될 것이라고 보진 않지만, 곳곳에 직원과 경찰이 있다 보니 평소보다 불안함이 덜하다"고 말했다. 이날 애덤스 시장의 발언처럼 지하철은 '뉴욕의 생명선'이자 '혈관'이다. 취임 후 '공공안전' 확보라는 첫 시험대에 선 애덤스 시장의 카드가 성공적으로 통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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