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대심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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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거나 추행한 자를 각각 준강간죄, 준강제추행죄로 처벌하는 형법 제299조 중 '항거불능' 부분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청구인은 '항거불능' 개념이 불명확해 죄형법정주의에 반하고, '술을 마신 상대방과 성관계를 맺을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헌재는 준강간 및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을 선고받은 A씨가 '준강간죄와 준강제추행죄를 규정한 형법 제299조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낸 헌법소원심판 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형법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는 자고 있거나, 의식을 잃은 경우 등 '심신상실' 상태에 있는 피해자나 포박돼 있어 신체적으로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는 환자처럼 심리적으로 저항이 불가능해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간음하거나 추행한 경우 폭행·협박을 통해 강간 혹은 추행하거나 유사강간 행위를 저지른 것과 똑같이 처벌하는 규정이다.

A씨는 2015년 7월 4일 술에 취해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두 차례 추행하고, 피해자가 잠들자 간음한 혐의(준강제추행 및 준강간)로 재판에 넘겨져 2017년 1월 13일 징역 4년 등을 선고받았다.


A씨는 항소했지만 기각되자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고, 상고심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재판부에 처벌 근거조항인 형법 제299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지만 기각되자 직접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법원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면 당해 재판은 헌재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정지되지만, 법원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 기각돼 당사자가 직접 헌법소원을 제기한 경우에는 재판이 계속 진행된다. A씨는 헌재의 심리가 진행되는 도중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돼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A씨는 헌법소원을 청구하며 "형법 제299조의 구성요건인 '항거불능'은 그 의미나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자의적 해석 및 적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 결과 대법원은 항거불능의 상태에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뿐만 아니라 '현저히 곤란한 경우'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따라서 형법 제299조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A씨는 형법 제299조 전체를 문제 삼았지만 헌재는 A씨 주장의 취지를 살펴볼 때 형법 제299조 중 '항거불능' 부분을 다투고 있다고 판단, 심판대상을 형법 제299조 중 '항거불능' 부분으로 한정했다.


먼저 헌재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형법 제299조는 이미 존재하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해 간음 또는 추행을 한 경우를 폭행 또는 협박으로 강간 또는 추행을 한 경우와 동일하게 처벌하는 규정"이라며 "이는 정신적 또는 신체적 사정으로 인해 성적인 침해에 대해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헌재는 "'순종하지 않고 맞서서 대항할 능력이 없는 상태'라는 '항거불능'의 사전적 의미와 위와 같은 형법 제299조의 목적을 함께 고려하면, '항거불능'의 상태란 가해자가 성적인 침해행위를 함에 있어 별다른 유형력의 행사가 불필요할 정도로 피해자의 판단능력과 대응·조절능력이 결여된 상태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항거불능'의 상태는 형법 제299조의 문언상 '심신상실'에 준해 해석돼야 하므로, 정신장애 또는 의식장애 때문에 성적행위에 관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심신상실 상태와 동등하게 평가가 가능한 정도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헌재는 "대법원도 이러한 전제에서 '형법 제299조에서의 항거불능의 상태라 함은 형법 제297조(강간), 제298조(강제추행)와의 균형상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 때문에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한다'라고 일관되게 판시해 구체적 해석의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헌재는 "이를 종합하면,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형법 제299조의 '항거불능'의 상태가 무엇인지 예측하기 곤란하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 해석이나 적용가능성이 있는 불명확한 개념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밝혔다.


한편 헌재는 형법 제299조가 '술을 마신 상대방과 성관계를 맺을 자유'를 침해한다는 A씨의 주장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청구인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상호 합의하에 성관계가 이뤄진 사안에서도 수사 및 재판절차에서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가 인정돼 준강간죄가 성립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형법 제299조가 술을 마신 상대방과 성관계를 맺을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앞서 살핀 것과 같이 형법 제299조는 정신적·신체적 사정으로 인해 성적인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원치 않는 성적 관계를 거부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써 상호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므로 청구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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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결정은 헌재가 형법 제299조 중 '항거불능' 부분의 위헌 여부에 대해 처음 판단한 사건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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