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애플·다이슨…기업 성장의 결정적 ‘비즈니스 모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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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전 세계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글로벌 기업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주력인 반도체 사업이 처음부터 잘 나갔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룹 내 미운 오리 새끼로 천대받았다. 그것도 10년간이나. 그러던 중 중대한 모멘트를 맞이해 급성장하게 됐는데 책 ‘비즈니스 모멘트’(EBS BOOKS)는 그 ‘순간’을 소개한다.


우리나라 반도체의 시작에 ‘삼성’의 이름은 없었다. 국내 최초 반도체 회사는 1965년 미국의 반도체 업체인 코미(Komy)가 트랜지스터 생산을 위해 세운 ‘고미반도체’이다. 최초의 국내 투자는 1970년 금성사(현 LG전자)와 아남전자가 설립한 회사다. 반면 반도체 핵심 재료 ‘웨이퍼’ 생산에 성공한 건 1974년 ‘한국반도체’인데, 이게 바로 삼성전자 부천 반도체 공장의 시작이었다. 당시 서른세 살의 이건희가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절반을 인수했고, 이후 1977년 완전히 인수해 1978년 ‘삼성반도체’로 상호를 변경했다.

다만 삼성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을 당시만 해도 반도체를 크게 키울 생각이 없었다. 제일모직이나 제일제당 등으로 내수산업을 키워나가는 상황이었고, 기술이 궤도에 오른 미국, 일본과는 무려 27년의 격차가 존재했다. 생산 가능 제품도 트랜지스터 정도에 불과했고, 10년 넘게 수익 없이 적자만 늘리는 그룹 내 미운오리새끼였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건 1983년이다. 당시 일본은 반도체를 비롯한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미국을 앞서면서 기존 20억달러 정도였던 무역흑자를 100억달러로 늘리고 있었다. 이에 삼성 이병철 회장은 1983년 2월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단했는데, 이는 ‘2·8 도쿄 구상’이라 불린다.

반도체 개발은 쉽지 않았다. 샤프, 마이크론과 기술 제휴를 맺었지만 “가르쳐주기는커녕 알아서 배워가라는 식”이었고“ 메모조차 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결국 64K D램 독자 개발을 시도, 1983년 9개월 만에 개발에 성공했다. 다만 미국과 일본의 경쟁에 반도체 수급은 과잉 상태였고, 1986년 삼성반도체의 누적 적자는 2000억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삼성은 투자를 거두기는커녕 3라인 건설이란 과감한 공격을 택했다.


그러던 중 기적적인 일이 발생했는데, 그건 다름 아닌 IBM과 애플의 개인 컴퓨터 출시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최신기술인 1M D램 생산에 열을 올렸지만 미국의 컴퓨터 업체들이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렴한 256K D램을 사용하면서 256K D램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삼성은 순이익 3000억원을 남겨, 적자를 메우고도 1000억원을 거둬들였다.


저자는 이런 ‘순간’들을 다채롭게 소개한다. 독자개발의 성장 모멘트를 맞은 건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 1967년 12월29일 정주영 회장은 현대자동차를 설립하고 포드자동차와 기술 합작 계약을 맺었지만, 포드가 경영권과 지분을 무리하게 요구하자 1973년 독자노선을 선택해 ‘포니’를 탄생시켰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기술전수에 미온적인 선진국의 도움 없이 독자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한국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 두 번째로 자동차를 독자 개발한 나라로, 포니는 출시 당해에만 1만대 넘게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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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현대·애플·다이슨…기업 성장의 결정적 ‘비즈니스 모멘트’ 원본보기 아이콘

저자는 이 외에도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성장시킨 배경, 토요타의 세계 1위 자동차 업체가 되기까지의 과정, 수천 번의 실패 끝에 청소기 시장의 혁신을 일으킨 다이슨 등 글로벌 기업의 성공 순간들을 꺼내 보인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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