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생명 못 지킨 경찰, 체질 개선할 수 있을까
연이은 경찰 부실 대응사건에 시민들 '분통'
오피스텔 살인사건 피해자 신고에도 '스마트워치' GPS 오류…'골든타임' 놓쳐
전문가 "앞서 유사한 사건에도 스마트워치 오류 보완 안 돼…경찰 직업의식 부족했다"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시민 생명 지킨다는 경찰이 칼 든 범인 무서워서 도망 가는 게 말이 되나.", "무능력한 경찰 파면시키자."
인천 흉기난동 사건에 이어 서울 오피스텔 살인 사건까지 연이은 '부실 대응' 논란을 일으킨 경찰을 향해 십자포화가 쏟아지고 있다. 시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경찰이 직무를 유기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경찰은 거듭 머리를 숙이며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국민적 공분은 가라앉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 19일 오전 경찰 신변보호 대상이던 30대 여성이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자 A씨는 지급받은 스마트워치로 두 차례에 걸쳐 응급 구조 신호를 보냈으나, 경찰이 사건 현장과 떨어진 서울 명동으로 출동하면서 '골든 타임'을 놓쳤다. 피해자의 스마트워치가 GPS 오류로 현장과 약 500m 떨어진 위치값을 송신했기 때문이다.
스마트워치의 위치값 오류 문제는 4년 전에도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지난 2017년 8월21일 부산 강서구에서 옛 동거남의 위협으로 경찰 신변보호를 받던 50대 여성이 살해됐다. 당시 주점을 운영하던 피해자는 가해자가 주점으로 찾아오자 스마트워치 버튼을 눌러 신고했으나, GPS 오류로 인근 기지국 위치만 전송됐다.
이에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경찰은 현장이 아닌 피해자의 집으로 출동, 결국 피해자는 스마트워치로 호출신호를 보낸 지 약 10분 뒤 흉기에 찔려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경찰 신변 보호 시스템이 허점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지난 2017년 부산 강서구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은 스마트워치의 위치값 오류를 보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까지 보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경찰의 사전 대응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A씨는 올해 피의자 B씨에 대한 스토킹 등 신고를 총 6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은 B씨에 대해 격리 조치와 경고장 발부 등으로 조치했으나, 앞서 수차례 신고가 접수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강력한 사전 대응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오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 스토킹 피해자 보호가 부족했다는 비판에 대해 "사건 이전에도 경찰이 계속해서 피해자 동행 보호 조치를 진행 중이었다"며 "경찰이 24시간 따라다닐 수 없다. 피해자가 요구할 때만 경찰이 동행하며 보호할 수 있는데 (하필 경찰이 동행하지 않은 때에) 그런 참사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토킹 피해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을 살해하고 도주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부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의 대응에 대해서도 논란이 거세다. 지난 15일 인천시 남동구 한 빌라에서 가해자가 신고자에게 흉기를 휘둘렀지만, 출동한 경찰관이 구급 및 지원 요청을 이유로 현장을 이탈했다. 아래층에 있던 경찰 또한 사건 현장으로 즉각 올라오지 않는 사이 피해자는 흉기에 찔렸다.
사건 당시 두 경찰은 권총과 테이저건을 소지하고 있었으나 가해자를 제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가족은 경찰의 부실 대응에 분노했다. 지난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자신을 피해자 가족이라고 밝힌 청원인이 '층간소음 살인미수 사건에서 경찰 대응 문제로 인천 논현경찰서를 고발합니다'의 제목의 청원글을 올렸다. 청원인은 "경찰이 사건을 만들었고 또 키웠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이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느냐"고 호소했다.
청원인은 '사건 이전에 이미 살해 협박, 성희롱 등으로 수차례 가해자를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이 이를 단순 층간소음으로 치부하며 조치없이 돌아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건 당일에도 경찰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확실히 분리 조치하지 않았고, 흉기 난동 때도 적극적으로 가해자를 저지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청원인은 "경찰이 범인이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국가적으로 이런 경찰 내부적인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당 청원은 23일 오후 2시 기준 23만여명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 답변 요건을 갖춘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부실 대응과 관련해 질책에 나섰다. 22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의 춘추관 브리핑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경찰의 최우선적인 의무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인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 훈련을 강화하고 시스템을 정비하라"고 주문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경찰은 사과와 함께 스토킹범죄 대응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서울경찰청은 "청장을 비롯한 서울경찰 모두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국민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고인과 유족,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대응 실패를 시인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스토킹 범죄 대응 개선 TF를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일은 경찰이 보다 정교하지 못하고 신속·철저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면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중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것에 대해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경찰의 직업의식이 부족했던 사건임을 강조했다. 오 교수는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의 경우 경찰은 입이 열개가 있어도 할 말이 없다. 경찰관 중 한 명은 현장을 이탈하고, (아래층에 있던) 경찰도 따라 올라가지 않았다"면서 "(최근 일각에서 제기된) 여경·남경의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경찰로서의 직업의식 (부족) 문제"라고 꼬집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멈칫하는 순간, 순식간에 추격당한다…삼성·하이...
이어 경찰 채용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현장에서 경찰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신체적 능력을 위한 체력 테스트를 강화해야 할 뿐 아니라 정신적인 능력도 (중요한 채용 기준으로) 둬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