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이슈+] 시진핑 장기집권의 도구, '역사결의'의 의미
시진핑, 마오쩌둥·덩샤오핑과 동급 반열 올라
장기집권 확고해진 자신감...대외강경책 완화 기대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중국 공산당이 최근 '역사결의'를 발표하면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역사결의란 1921년 중국 공산당 창당 이후 이번까지 단 3번만 발표된 것으로 해당 결의를 이끌어낸 지도자들은 모두 종신독재에 성공한 바 있죠. 이로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종신독재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공산당의 역사결의로 시주석이 중국의 3대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고 보도했습니다. NYT는 "역사결의는 시주석 집권기간동안 발생한 어떤 실책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시주석의 통치로 부패가 척결되고 가난이 줄어들었으며 정적들을 제거해 온 그의 성공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있다"며 "이는 이미 강력한 지도자가 된 시주석에게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라고 평가했죠.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지난 17일 역사결의 전문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해당 내용은 1921년 창당 이후 중국 공산당 100년사를 간략히 소개하고 시대적 변화와 얽힌 중국 지도자들의 결단의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요. 3만6000여자 분량의 전문에서 시주석은 중국의 국부라 불리는 마오쩌둥과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과 같은 지도자와 동일한 업적을 일군 위대한 지도자로 부각됐습니다.
40년만에 등장한 역사결의...시진핑, '공동부유' 지도자로 부상
중국 역사에서 역사결의란 것이 처음 나온 것은 1945년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역사결의는 1921년 공산당 창당 이후 국부로 불리는 마오쩌둥이 자신의 정적들을 정리하고, 소련식 공산주의와 결별하면서 중국 자체적인 국가체제를 구축해나간다는 것을 선포하기 위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마오쩌둥은 공산당 내 반대세력들을 모두 숙청하고 장기집권의 토대를 열게 됐죠.
이후 두 번째 역사결의는 1981년에 실시됐습니다. 당시는 마오쩌둥 사후에 실권을 장악한 덩샤오핑에 의해 주도됐는데, 전임 마오쩌둥이 주도했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실패를 거울삼아 중국이 대대적인 개혁 개방 정책으로 선회하겠다는 것을 선포한 내용이었죠. 그러면서 개혁개방을 주도하는 덩샤오핑 역시 강력한 권력을 손에 넣게 되었고, 1997년 사망할 때까지 종신독재를 하게 됩니다.
이번에 시주석이 한 역사결의도 시주석의 종신독재를 위한 토대로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역사결의의 주된 내용은 덩샤오핑 이래 추진해온 30년간의 개혁개방에 대한 반성과 시주석이 주창한 '공동부유' 사회 구축을 새로운 시대 목표로 제시한 내용이었죠.
中, 대외 강경정책 변화...미중 정상회담 이후 긴장완화 기대
이번 역사결의로 시주석이 명실공히 장기집권의 길을 열면서 지금까지 중국정부가 추진해왔던 대외강경정책도 지금보다 완화될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화상으로 개최됐던 바이든 대통령하고의 첫 회담도 이 역사결의가 발표된 직후 개최된 것으로 알려졌죠.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계속 대미 강경정책을 이어오다가 정권안정에 큰 자신감이 생기자 만났다는 분석이죠. 내년에 시주석의 3연임이 확고해지면 아마 강경정책을 더 완화시키고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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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에 따르면 중국도 현재 코로나19 이후 경제성장률은 물론 실업문제가 매우 심각해진 상태고, 석탄과 전력부족 등 물가관리에도 비상이 걸린 상태입니다.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대립과 고립이 이어지면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정권 안정을 위해 대외 강경정책이 크게 완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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