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 없는 사람들, '트랜짓'이 말하는 난민 이야기 [강주희의 영상프리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난민 이야기, 현재로 이끌어 온 작품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이 연출한 '트랜짓(Transit·통과비자)'은 난민에 관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나치를 피해 프랑스에 온 사람들이 또 한 번 다른 나라로 망명하기 위해 겪는 지난한 과정을 그립니다.
파리에 머물고 있던 독일인 게오르그는 독일군이 파리로 진격하자 생존이 위험한 상황에 처합니다. 그러다 친구로부터 유명 작가인 바이델에게 편지 두 개를 전달해 주면, 비점령지인 항구도시 마르세유로 피신하도록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받습니다.
편지 중 하나는 마르세유의 멕시코 대사관에서 보낸 것으로 바이델에게 비자를 제공할 테니 멕시코로 오라는 내용, 다른 하나는 바이델의 아내 마리가 보낸 것으로 '마르세유에서 기다리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이델은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태였죠. 게오르그는 바이델이 마지막으로 남긴 소설과 두 개의 편지를 지니고 화물열차 칸에 숨어 마르세유로 향합니다.
무장 경찰의 삼엄한 눈을 피해 도착한 마르세유의 멕시코 대사관에는 게오르그와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사람이 몰려있었습니다. 비자 발급 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지휘자, 미국인 부부가 남긴 개를 돌보느라 맘 편히 떠나지 못하는 유대인 여자, 가족과 소중한 이를 잃어버리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정으로 마르세유에 오기 위해 목숨 걸고 도망쳤지만, 프랑스를 떠나기 위해선 복잡한 비자 발급 절차를 또다시 거쳐야 합니다. 비자 발급은 길게는 수개월이 걸리고,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는 발급 자체가 불발될 수도 있죠. 이들은 기약 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입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만이 이곳에서조차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대사관 한구석을 차지하고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엔 조만간 프랑스를 떠날 수 있다는 희망과 결국 이곳에서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공존합니다.
'트랜짓'은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발생한 난민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현재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영화는 1940년 독일군이 프랑스 북부를 점령한 실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도 시대극이라고 느껴질 만한 이미지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프랑스의 거리, 불심검문 하는 무장 경찰들, 인물의 차림새 등은 1940년대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되지 않았으며, 현재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미지를 뒤섞는 방식을 택한 배경엔 과거에 발생한 비극이 현재 진행 중이라는 문제의식이 담겨있습니다. 전쟁과 종교분쟁 등으로 발생한 난민 유입, 수용 등의 문제는 여전히 국제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영화는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로 이끌어 와 지나간 일을 복기하는 것이 아닌, 현재성 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느끼도록 관객을 유도합니다.
난민들은 어디를 가든 자신의 신분을 입증할만한 서류를 끊임없이 요구받습니다. 그러나 살기 위해 무작정 도망쳐 온 이들이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불법체류자인 게오르그가 마르세유에 도착해 잠시 호텔에 머물려고 했을 때, 호텔 주인은 체류 허가증이 없다며 숙박을 거절합니다. 이곳에 묵고 싶다면 곧 프랑스를 떠날 것을 증명하는 비자와 승선표를 보여달라고 하죠. "그러니까 여기에 머무르려면, 머물지 않을 걸 증명하란 얘기네요?"라고 말하는 게오르그의 표정에는 절망감이 서려 있습니다.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라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희망은 서서히 좌절의 감정으로 변질됩니다.
자신의 신분으로는 이곳에서 안전한 삶을 살 수 없었던 게오르그는 죽은 작가인 바이델의 신분을 이용해 멕시코로 떠날 생각을 합니다. 게오르그는 원래 바이델이 남긴 마지막 원고와 유품을 전달하기 위해 멕시코 대사관에 방문했지만, 대사관 영사가 그를 바이델로 오인하면서 멕시코로 갈 수 있는 비자와 승선표를 얻을 수 있게 되죠.
그러던 중, 게오르그는 바이델의 아내 마리를 만납니다. 마리는 바이델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마르세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남편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이델과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의 뒤를 쫓아가 남편이 아닌 것을 깨닫고 실망하기를 반복합니다. 바이델은 이미 죽었으며,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도 그녀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마치 영혼 없는 유령처럼, 마리는 계속해서 도시 여기저기를 떠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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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를 사랑하게 된 게오르그는 그녀에게 승선표를 넘겨주고 멕시코로 떠나게 도와줍니다. 그러나 마리를 항구에 데려다준 뒤 돌아온 식당에서 게오르그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마리를 또다시 마주칩니다. 그녀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환영인지 실제인지 모를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게오르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고, 그렇다고 이곳에 남아 정착할 수도 없는 사람들. 목적지를 잃어버린 이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지속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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