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CEO가 뜬다]① 애자일 조직의 심장…쿠팡부터 초기 스타트업까지 ‘러브콜’
잘게 쪼갠 사업 부문 총괄…프로덕트 최종 의사결정권자
팀원 평가 권한 없어…팀장과 달리 수평적 소통
쿠팡, 토스 등 중심으로 확산…규모 커져도 ‘PO 체제’ 유지
제너럴리스트적 역량 갖춰야…“작은 스타트업 CEO와 비슷”
[아시아경제 이준형 기자] 프로덕트 오너(PO)는 스타트업 특유의 유연하고 순발력 있는 조직 운영을 상징하는 존재다. PO는 잘게 쪼개진 사업 부문을 총괄하고 해당 부문의 최종 의사결정권을 갖는다. 업계에서 PO는 ‘미니 CEO’로도 불린다. 쿠팡 등 ‘조’ 단위 몸값으로 성장한 대형 스타트업들도 민첩한 경영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조직을 끊임없이 작은 단위로 나누고 PO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제2벤처붐에 힘입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사)이 속속 등장하며 PO 수요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스타트업 대표가 다른 스타트업의 PO로 합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 4050 패션앱 ‘퀸잇’ 운영사 라포랩스의 최희민 공동대표는 두 차례 창업을 경험한 후 비바리퍼블리카 PO로 합류한 바 있다. 일부 스타트업은 PO 채용시 스타트업 창업 경험을 우대조건으로 꼽는다. 소규모 팀을 이끌며 제품·서비스를 기획하고 출시하는 과정이 초기 스타트업 경영과 유사한 측면이 많은 까닭이다. 오히려 대기업 출신 인재들은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 등에 익숙해 PO 직군으로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플랫폼 스타트업 대표는 "대기업 출신은 보고서 작성, 상급자 결재 등 형식과 절차에 집중된 기존 방식을 바꾸는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면서 "PO 채용시 스타트업 경력 등을 더 선호하는 대표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애자일 ‘심장’…평가 권한 없어
PO는 애자일(Agile) 조직의 ‘심장’이다. 회사에 필요한 프로덕트(제품·서비스)를 찾는 일은 PO가 프로젝트 추진 시 꿰는 첫 단추다. 이후 곳곳에 흩어진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을 모아 팀을 구성한다. 원하는 인력은 물론 인력이 소속된 부서의 장을 설득해야 할 때도 있다. PO에게 ‘사람 보는 눈’만 있어서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팀을 구성하면 고객 페인포인트(Pain Point·불편함을 느끼는 지점)를 분석해 프로덕트 기획을 마무리해야 한다. 서비스 개발·출시 일정을 잡고 업무 분담을 하는 일까지 모두 PO의 몫이다. 프로덕트 출시 후 필요한 영업, 마케팅, 서비스 안정화 등도 PO가 책임지는 영역이다.
애자일 조직은 ‘혁신의 요람’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본래 애자일은 정보기술(IT) 개발자 간 긴밀한 협업을 바탕으로 빠른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소프트웨어(SW) 개발 방법론에서 유래했다. 이후 조직 경영론에 적용돼 팀, 부서 등의 경계를 허문 업무 방식을 뜻하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애자일 조직은 ‘헤쳐모여’ 같은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따라 유동적으로 팀을 구성하고 해체한다. 팀 규모는 대개 5~10명으로 크지 않다. 또한 팀원 간 직급·존칭 등이 없는 수평적 조직 모델을 지향한다.
국내 스타트업은 대부분 이 같은 업무 방식을 채택했다. 애자일 조직은 스타트업 조직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업력 6년차 스타트업 직원은 "PO는 팀장과 달리 구성원에 대한 평가 권한을 갖지 않는다"면서 "그만큼 구성원들과 수평적인 소통이 가능하고 서비스 성공을 위해 함께 간다는 느낌을 준다"고 밝혔다.
실리콘밸리 조직문화...옥석가리기는 과제
쿠팡, 우아한형제들 등 2010년대 전후로 등장한 스타트업들은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추구하며 실리콘밸리 문화를 적극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PO는 자연스럽게 스타트업 핵심 인력으로 부상했다.
최근 제2벤처붐을 기점으로 스타트업 생태계가 팽창하며 PO 수요도 덩달아 늘어났다. 업계 관계자는 "모바일 시대와 함께 플랫폼이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올라타며 PO가 각광받은 측면이 있다"면서 "플랫폼 서비스라는 개념이 일반화되면서 서비스 기반의 프로덕트를 설계하는 PO가 주목받았다"고 설명했다.
비바리퍼블리카의 PO 중심 조직 운영은 창업 초기부터 이목을 끌었다. 비바리퍼블리카 직원들은 6~7명 규모의 조직 ‘사일로(Silo)’를 중심으로 일한다. PO는 한 사일로를 이끌며 서비스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새로운 사일로에 투입된다. 2개 이상의 사일로가 통합돼 트라이브(tribe)로 운영될 때도 있지만 PO의 권한은 변함없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비바리퍼블리카 관계자는 "PO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성공시키고자 하는 간절함"이라며 "사업화, 데이터 분석 능력은 물론 세일즈 역량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옥석가리기는 남은 과제다. PO 채용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실력자’는 드물다는 지적이 있다. PO는 개발, 디자인, 마케팅 등 다양한 업무를 총괄해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적 역량을 갖춰야 하는 까닭이다. 업계 관계자는 "PO는 사실상 프로덕트의 성공을 위해 모든 걸 다 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고객 니즈 파악부터 시작해 여러 분야의 팀원들과 소통하는 등 작은 스타트업 CEO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텀블러에 담아 입 대고 마셨는데…24시간 지난 후...
업력 2년차 스타트업 대표는 "PO는 모두에게 열린 자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잘 해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면서 "실력 있는 개발자 채용보다 실력 있는 PO 채용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