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관 전화 한통…수천만원 뜯겨
'피싱 일당' 코인 지갑 주소로 입금 지시
범행부터 종료까지 32시간

피해자 A 씨가 제공한 가상화폐 자산 사진. 사진 속 자산은 2천4백만원이지만, A 씨는 모두 총 4천만원 상당의 코인 갈취 피해를 입었다. 오른쪽은 피싱 일당이 보낸 코인 지갑 주소.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피해자 A 씨가 제공한 가상화폐 자산 사진. 사진 속 자산은 2천4백만원이지만, A 씨는 모두 총 4천만원 상당의 코인 갈취 피해를 입었다. 오른쪽은 피싱 일당이 보낸 코인 지갑 주소.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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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일당에 가상화폐(코인)를 뜯겼다는 피해자가 나타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피싱 일당은 검찰 기관을 운운하며 피해자를 겁박, 약 4천만원 상당의 코인을 갈취했다.


13일 아시아경제가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피해자 A 씨는 8일 오전 9시께 자신을 서울지검 수사관이라고 밝히는 3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

남성은 A 씨가 통장이 대포통장 범죄와 연관이 있다면서 A 씨가 공범이 아니라면 명의가 도용된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에서 A 씨 전과를 조회해보니 기록이 없고 사건 발생 지역도 아니기 때문에 금융감독위원회(금감원) 약식조사를 하면 금방 조사가 끝난다고 설득했다.


이후 피싱 일당은 A 씨에 따르면 현재 위치나 인상착의 등 개인 정보가 아닌 A 씨 계좌 개수를 물어봤다고 한다. A 씨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주거래 통장 계좌가 몇 개 있다고 답하자, 일당은 특정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며 들어가서 사건 내용 조회해보라고 했다.

피싱 일당의 범행은 치밀했다. 그들은 A 씨가 자신의 범행 수법에 넘어왔다고 판단했는지, A 씨를 몰아세우며 지금 과정이 보이스피싱 과정인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A 씨에 따르면 그들은 "왜 계좌 개수가 다르냐", "(통화한 내용) 진술을 신뢰할 수 없다", "금감원 약식조사가 불가능하니, 영장을 집행해 구치소에 수감될 수 있다"고 겁박을 했다. A 씨는 이들이 이렇게 강하게 나올 수 있는 이유로 앞서 사이트 주소에 접속해 자기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서, 개인 정보가 모두 피싱 일당에 넘어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A 씨는 "조사녹취 중이라 마음대로 통화를 끊으면 안 된다"면서 "말을 끊임 없이 빨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조작된 영장 같은 걸 제가 직접 소리 내서 읽게 하면서 다른 생각을 못하게 했다"고 전했다.


비트코인. 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관계없음.

비트코인. 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관계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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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그 순간 피싱 일당에게 더욱더 제대로 협조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어 일당은 A 씨가 공범으로 의심된다며 속칭 '휴대폰 검열'에 들어간다며 A 씨 스마트폰에 자신들이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도록 했다.


A 씨는 '빨리 조사를 받고 끝내자'는 심정으로 앱을 설치했다. 이후 A 씨는 보이스피싱 의심이 들어 직접 경찰과 금감원에 관련 문의를 했으나, 이미 A 씨 휴대전화는 일명 '좀비폰'이 되어 피싱 일당들의 계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예컨대 A 씨가 통화한 경찰은 실제 수사기관이 아닌 피싱 일당 측인 셈이다.


또 일당은 A 씨가 지인이나 외부에 이 상황을 알리지 못하게도 지시했다. 그들은 이 내용은 철저히 함구해야 하며, 외부에 발설하면 지인들도 전부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고 A 씨를 몰아세웠다.


이후 피싱 일당은 A 씨의 자산을 보관해주겠다며 가상화폐 지갑 주소(은행의 계좌 번호와 같은 코인을 이체할 수 있는 주소)를 알려주며 A 씨 자산을 보관해주겠다고 했다. 이에 A 씨는 자신의 코인 재산을 모두 피싱 일당에게 넘겼고, 이들은 자취를 감췄다. 그 과정에서 뜯긴 돈은 가상화폐 약 4천만원에 해당한다. 또한 A 씨 정보를 이용해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르고 있을 수 있다.


사건 발생부터 범행 종료까지 종합 시간을 보면 8일 오전 9시께 범행 시작, 9일 오후 5시 범행 종료 모두 32시간이 밖에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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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저처럼 (피싱의로 의심되는 내용은) 듣다가 아니다 싶음 (통화를) 끊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들어주고 있다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 제가 이미 범죄자 신분이 된 것으로 저 자신을 착각하게 된다"면서 "이 억울한 누명에서 얼른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사기꾼들이 시키는 말도 안 되는 짓을 당연한 것처럼 시행하게 된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저와 같은 피해를 당하시는 분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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