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3대에 걸친 북한의 '영변카드', 포기할때
[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최근 열린 총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영변 플루토늄 5㎿ 원자로 재가동 가능성을 제기했다.
IAEA는 지난 7월 초부터 원자로에서 냉각수가 방출된 것을 비롯, 원자로 인근 연구소에서 플루토늄을 폐연료통에서 추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징후를 재가동 증거로 제시했다. 원자로가 멈춘 것은 싱가포르 회담 직후인 2018년 12월로, 보고서가 사실이라면 2년 반 만에 활동이 재개된 셈이다.
영변 5㎿ 원자로 가동은 사실상 북한 핵 활동 재개의 신호탄으로 간주된다. 방사화학연구소에서의 재처리는 기존 폐연료봉으로도 가능하지만 원자로 재가동은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의 추가 생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했다고 해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북한이 ‘영변 카드’를 꺼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변 핵단지가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의 중심에 선 것은 김일성 주석 시절인 1993년부터다.
1993년 3월 북한이 IAEA의 특별사찰에 반발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후 이듬해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회담에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하며 ‘1차 북핵위기’를 조성했다.
이후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상과 로버트 갈루치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가 만나 북·미 고위급 회담을 열고 미국과 북한은 핵 동결과 경제 지원, 관계 정상화 추진을 골자로 한 ‘제네바 기본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인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고농축 우라늄 핵 개발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함으로써 2차 북핵위기가 발발했다.
이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중유 지원을 중단하자 북한은 ‘핵 동결 해제 선언’과 함께 원자로 활동을 재개했다. 이후 북핵 6자 회담이 가동됐고 2005년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 포기’ 등 6개 항이 담긴 ‘9·19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그리고 2007년 북한은 ‘영변 원자로 폐쇄와 불능화’에 합의한 다음 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폭파쇼를 선보였다. 그해 6월 6자회담 참가국과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수명이 다한 5㎿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며 "제재를 풀고 우리 체제를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전 세계를 기만한 셈이다.
미국과 북한이 마지막으로 영변 핵 활동 중지에 합의한 것은 2012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체결한 ‘2·29’ 합의였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영변 우라늄 농축활동의 임시 중단 등을 대가로 미국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합의였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무용지물이 됐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영변 카드를 다시 꺼냈다.
하지만 또 무산됐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내 영변 외에 다른 시설들이 있다며 ‘플러스 알파(α)’를 요구,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에 북한이 영변 5㎿ 원자로를 재가동한 것 역시 미국에 대한 압박용에 불과하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북한의 의도를 잘 알고 있다. 2008년 폭파쇼에 따른 전철을 다시 밟지 않겠다는 게 바이든 행정부 대북 전략의 기본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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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도 북한의 영변 카드에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이 무조건적인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경우 단 한걸음도 움직여서는 안 된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친 영변 카드는 이제 포기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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