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웅의 에너지전쟁] 9.11테러와 탈레반, 그리고 석유
9·11테러 원인, 뿌리 찾으면 결국 '석유'
미국이 산유국인 사우디를 우방국으로 삼다가 테러까지 이어져
1979년 이슬람 혁명도 따져보면 석유에서 시작
아시아경제신문은 한 달에 한 번씩 목요일자에 대변혁기를 맞은 에너지 산업을 진단하고 그에 얽힌 국제 질서 변화를 짚어보는 '최지웅의 에너지전쟁'을 연재합니다. 저자는 2008년 한국석유공사에 입사해 유럽ㆍ아프리카사업본부, 비축사업본부에서 근무하다가 2015년 런던 코번트리대의 석유ㆍ가스 MBA 과정을 밟은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 입니다. 석유의 현대사를 담은 베스트셀러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를 펴냈습니다. 지난해에는 본지에 <석유패권전쟁> 칼럼을 연재해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테러를 꼽는다면 2001년 9·11 테러일 것이다. 비행기 두 대가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하고 110층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끔찍한 모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될 정도로 충격으로 남아 있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테러 주동자로 사우디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이끄는 알카에다를 지목했다. 그리고 그를 보호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탈레반을 공격한다. 테러가 있고 한 달도 지나지 않은 2001년 10월7일 시작된 이 전쟁은 무려 20년 가까이 지속된다. 그러나 끝내 아프간에서 탈레반은 살아남았다. 결국 작년 2월 미국과 탈레반은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평화협정 이후 미군이 점진적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프간에서는 다시 탈레반이 급격히 세를 확장하며 결국 최근 수도 카불까지 점령했다.
사실 탈레반은 처음부터 미국과 대결할 의도를 가진 단체는 아니었다. 탈레반의 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는 내전 중인 아프가니스탄 장악이 최우선 목표였고 그 과업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 1989년 소련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이후, 아프간은 구 정부군, 무장 군벌, 종교 세력이 치열한 내전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칸다하르 지역에서 성장한 수니파 원리주의 성향의 무장 집단 탈레반은 사우디와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아 가장 유력한 단체로 부상했다. 1996년에는 수도 카불까지 점령했다. 그러나 아프간 북부에서는 ‘북부 동맹’ 세력이 탈레반에 치열하게 맞서고 있었다. 당시 탈레반은 아프간의 지배 세력이 되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
그런데 탈레반의 성격이 바뀌는 사건이 발생한다. 1996년 5월, 사우디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는 사우디 왕실을 미국의 대리인(Agent)으로 규정하며 왕실에 반기를 들었다. 따라서 신변의 위험을 느끼는 상황이었고 사우디와 수단에서 추방되다시피 하면서 아프간까지 쫓겨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탈레반 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를 만난다.
미국도 빈 라덴과 그가 이끄는 알카에다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빈 라덴과 탈레반이 연합할 가능성은 낮게 봤다. 당시 탈레반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는 같은 수니파의 맹주국 사우디 왕실이었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그들의 후원 세력인 사우디 왕가를 부정한 빈 라덴을 보호하고 연합한다면 중요한 후원자를 잃을 수 있었다. 실제로 탈레반의 지도자 오마르는 빈 라덴을 사우디에 넘겨줄 계획도 갖고 있었다. 다만 빈 라덴이 알카에다의 수장이라는 점과 반발 세력을 의식해서 사우디도, 탈레반도 그 적당한 시기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도 탈레반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미국 입장에서는 사우디와 같은 수니파이자 반사회주의 성향의 탈레반이 아프간의 지배세력이 되어 지역을 통치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지역 안정화 방향이었다.
그런데 빈 라덴의 탈레반 합류 이후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빈 라덴은 서구 언론과 빈번하게 접촉했다. 이 과정에서 더부살이 처지였던 빈 라덴이 탈레반을 상징하는 인물이 된 듯한 착시 효과를 일으키며 대미 성전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그는 아프간에 온 지 3개월이 지난 1996년 8월 ‘두 개의 성지를 점령한 미군에 대한 지하드 선언’을 서구 언론을 통해 발표한다. 여기서 미군에 대한 테러는 그들의 도덕적 의무이자 합법적 권리라고 주장한다.
이슬람의 성지 메카에 이교도의 군대 미군이 주둔한다는 것은 이슬람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상당수 무슬림 개인이 하고 싶었던 말을 빈 라덴이 서구 언론을 통해 표출하자 결국 탈레반도 그를 사우디에 송환하는 것을 포기한다.
탈레반의 비호 아래 빈 라덴은 오랫동안 구상해온 테러를 치밀하게 진행했다. 바로 2001년의 9·11 테러이다. 그의 야심은 미국의 정치, 경제, 국방의 중심을 동시에 타격하겠다는 것이었다. 대형 여객기 4대를 납치해 2대는 미국 자본주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를, 1대는 미국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을, 그리고 마지막 1대는 백악관을 공격하겠다는 구상을 한다.
백악관을 겨냥한 1대의 여객기는 승객들의 용기 있는 저항으로 실패하지만, 3대는 빈 라덴의 계획을 실현했다. 이후 미군은 아프간에 들어와 탈레반을 수도 카불에서 몰아냈고, 2004년 미국의 보호 하에 새로운 아프간 정부를 수립했다. 2011년 5월에는 마침내 오사마 빈 라덴도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사망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남쪽 국경으로 밀려났을 뿐 완전히 격퇴되지는 않았다.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년이었고, 이후 10년 가까이 더 싸웠지만 끝내 탈레반 격멸에 실패했다. 국토 대부분이 1000m 이상의 고원 지대에 속하는 거친 환경에서 미국이 정보망을 총동원해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할 수는 있었어도, 뿔뿔이 흩어진 무장 조직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제거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사실 빈 라덴도 아프간이 아닌 파키스탄에서 발견됐다.)
결국 20년의 긴 싸움 끝에 작년 미국과 탈레반은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소련군이 1979년 아프간에 들어왔지만 무려 10년의 전쟁 동안 수만의 사상자를 내고도 아프간을 장악하지 못했던 전철을 반복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탈레반은 카불을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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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의 근원을 찾아가보면 부부 관계에 비유될 정도로 긴밀한 미국-사우디 관계에 대한 이슬람의 반발이었다. 이란에서는 친미였던 팔레비 왕조에 대한 반발이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나타났고, 친미 사우디 왕실에 대한 반발은 20년 전 9·11 테러로 이어졌다. 그런데 미국이 사우디·이란과 같은 대형 산유국을 핵심 우방으로 삼으려 했던 이유는 결국 ‘석유’였다는 점에서 오늘의 역사에서 석유의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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