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규의 7전8기]빚으로부터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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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어쩌면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순간부터 존재했는지 모른다. 부의 불평등은 유사 이래 지속적으로 있어 왔기에 사람들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금전 등의 차용관계가 생겼다. 빚을 못갚으면 오래 전에는 감옥에 보내거나 노예로 삼기도 했다.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에게 빚을 못 갚을 경우 1파운드의 살을 베어주기로 한 것은, 빚을 못 갚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빚을 지는 것은 본인의 게으름이나 무차별적인 낭비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성실하게 열심히 살았지만 어쩔 수 없이 빚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인 지금이 그렇다. 시대적 요인에 비롯된 것이건 개인적 요인에 비롯된 것이건 누구나 빚을 갚을 수 없는 파산상태에 이를 수 있다.

빚을 못 갚는 사람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평생 빚을 갚도록 하는 것이 타당한가. 예를 들어 30대 초반에 월 300만 원의 급여를 받고 처와 자녀 2명을 부양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아버지가 사업자금을 빌리는데 보증을 서줘 40억 원이 넘는 빚(보증채무)을 부담하게 됐다. 자신의 급여를 전부 빚 갚는데 사용해도 평생 빚을 갚지 못한다. 약속(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법언에 따르면, 이 사람은 평생 빚을 갚아야 한다. 평생 빚 갚으며 살아가라고 하는 것이 정의인가. 아니면 빚을 탕감해주고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 사람에게 평생 빚을 갚으라고 하면 일할 의욕도 없어져 직장을 그만 둘 수도 있다. 이로 인해 가족부양이나 아이들의 미래 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실로 희망이 없는 삶이 된다.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한가.


개인의 경우 이러한 근본적인 고민 속에서 면책제도가 등장했다. 면책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빚을 없애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희망이 있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빚으로부터 해방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도 과다한 채무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전부 빚 갚는데 사용한다면 기업을 운영할 이유가 없어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 기업이 문을 닫으면 종업원은 일자리를 잃고 가족 붕괴 등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업에 대하여도 선제적으로 과다한 빚을 정리해 줄 필요가 있다.

빚을 정리하는 데에는 채권자와 합의하는 것과 강제적으로 하는 두 가지가 있다. 채권자와 합의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강제로 빚을 정리할 수밖에 없고 법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이다. 과도한 빚에 시달리는 개인이나 기업은 채무자회생법에 따라 강제적으로 채무를 조정할 수 있다. 채무로부터 자유로워진 개인이나 기업은 새로운 출발을 하거나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가정이 안정되는 등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한다. 채무자회생법을 통한 빚으로부터 해방은 사회안전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채무자회생법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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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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