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추모식 대신 이천포럼行
미래에 투자한 선구자
에너지·이통사업 초석 다져
주요 경영진·간부들
이날까지 나흘간 포럼 참석

폐암수술을 받은 고 최종현 회장(사진 왼쪽 두번째)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사진제공:SK그룹>

폐암수술을 받은 고 최종현 회장(사진 왼쪽 두번째)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사진제공:SK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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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고(故) 최종현 SK 선대 회장이 타계한 지 23주년이 된 26일, 회사 안팎에선 별다른 행사 없이 조용히 고인을 추모하며 하루를 보냈다. 앞서 2018년 최 전 회장 타계 20주기를 맞아 대규모 행사를 치른 후 이듬해부터는 가족 단위로 조촐히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경영진과 간부들은 이날까지 나흘간 열리는 이천포럼에 참석, 온라인으로 강연을 듣거나 토론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행사 마지막 날인 이날엔 직접 참석해 직원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천포럼은 최태원 회장이 "기술혁신과 사회·경제적 요구를 이해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통찰력을 키우는 토론장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면서 2017년 시작해 올해로 5년째를 맞은 행사다.

최종현 회장은 1973년 형인 최종건 SK그룹 창업 회장이 타계하자 뒤를 이어 회장에 올랐다. 최종건 회장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선경직물을 설립했고 이후 섬유사업에 주력해왔다. 최종현 회장은 취임하면서 선경을 에너지·화학분야 세계 일류회사로 키워나가자고 강조했다.


기존까지는 석유의 부산물 가운데 하나인 섬유를 주로 취급하는 데 그쳤으나 원유정제부터 시작해 석유화학, 필름, 원사, 섬유 등에 이르는 수직계열화가 맞는 방향이라고 봤다. 주변에선 어렵다고 했지만 최 회장은 중동지역 왕실과 석유네트워크를 갖추는 등 꾸준히 준비했다. 1970년대 1·2차 석유파동 때 직접 나서 원유공급을 이끌어내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수직계열화를 시작했다.

최종현 회장이 1986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사진제공:SK그룹>

최종현 회장이 1986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사진제공:SK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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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기술이 미래 먹거리라고 판단, 1980년대부터 미국 내 산업동향을 살피는 한편, 현지 법인을 세워 이동통신사업을 준비했다. 일찌감치 준비한 덕분에 1992년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됐으나 특혜시비가 일자 사업권을 스스로 반납했다. 최 회장은 "준비한 기업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며 오히려 직원들을 다독였다.


2년 후 새 정권이 들어서자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 이동통신사업을 본격적으로 했다. 주당 8만원대 주식을 33만5000원에 인수하면서 주변에선 말렸으나 최 회장은 밀어붙였다. 앞으로 회사를 더 키워내면 된다고 직원을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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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에서 굵직한 방향을 제시하거나 이끌었다면 인재 양성이나 교육은 살뜰히 챙겼다. 1974년 최 회장이 사재를 털어 만든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지금껏 3700여명의 장학생을 도왔다. 하버드·스탠퍼드 등 세계 유수 대학 박사 800여명을 배출했다. 재단 이름에 회사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고 비싼 해외유학 비용은 물론, 생활비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장학생이 부담으로 느낄 의무조항도 없었다. 부친 타계 후 2대 이사장을 맡은 최태원 회장도 해마다 이 재단 행사에는 참석해 격려하고 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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