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치하 여성 인권 주목한 영화 두 편
'칸다하르' 여동생 구하는 여정…감옥 같은 고향서 마주친 비극적 현실
'파르바나 :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절망적 상황서 피어난 꿈과 우정 그려

[이종길의 영화읽기]부르카 속 숨은 눈물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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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은 1994년 아프가니스탄 전장에 등장했다. 초대 지도자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는 칸다하르 서쪽 신게사르 마을에서 마드라사(이슬람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소련군에 저항하던 무자헤딘 출신이다. 게릴라전에서 네 번 부상해 오른쪽 눈이 멀었다. 공산정권이 무너진 뒤 무자헤딘은 분열돼 내분을 겪었다. 오마르와 동료들은 몸담았던 조직의 타락을 개탄했다. 이웃들이 겪는 고통을 안타까워하며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 무렵 무자헤딘의 한 지휘관이 신게사르 마을에서 소녀 두 명을 납치해 강제로 머리를 깎고 겁탈한 사건이 벌어졌다. 오마르는 마을 사람들의 탄원에 마드라사 학생 약 서른 명을 소집했다. 소총 열여섯 정만 들고 무자헤딘 기지를 공격했다. 그들은 소녀들을 구출하고 무자헤딘 지휘관을 탱크 포신(砲身)에 목매달아 죽였다. 훗날 오마르는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우리는 타락한 무슬림에 대항해 싸웠다. 여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그런 범죄가 일어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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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출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다. 사람들은 오마르 무리를 '(마드라사의) 학생'이라는 의미로 '탈레반'이라 불렀다. 탈레반(Taliban)은 '탈립(Talib)'의 복수형으로, 본래 구도자라는 뜻이다. 마드라사 학생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 이슬람을 올바로 세우겠다고 천명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마드라사 학생들은 앞다퉈 무리에 가담했다.


제법 덩치가 커진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했다. 그러나 엄격한 이슬람 율법통치와 인권침해로 무자헤딘 못지않은 악명을 얻었다. 도둑의 손발을 자르거나 매질하고, 간음한 자를 돌로 쳐 죽이는 공개 처형을 주례행사처럼 진행했다. 모든 남자는 길게 수염을 기르게 했다. 여성들의 바깥출입은 철저하게 봉쇄했다. 혹시 발각되면 가차없이 집단 린치를 가했다. 여성들은 집에서도 밖으로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창문을 닫아야 했다. 이를 참지 못한 몇몇은 자살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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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이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 데에는 이 같은 여성 인권 탄압이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15일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하며 20년 만에 정권을 다시 잡자 방방곡곡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 이유다. 이미 세계는 그들의 반문명적 만행을 잘 알고 있다. 여기에는 영화도 적잖은 역할을 했다.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는 '칸다하르(2001)'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나파스(닐로우파 파지라)가 곤경에 처한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칸다하르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을 비춘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뉴욕에서 9·11 사건이 터져 크게 주목받았다. 실화에 바탕을 두고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했으나 평가는 엇갈렸다. 좋은 의도와 달리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부정적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탈레반을 혐오하는 이란의 정치·종교 관점을 옹호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나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영화치고 형식적으로 엉성하다는 견해도 적잖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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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인 칸다하르는 탈레반의 거점이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억압과 비극을 상징한다. 하지만 페르시아 옛 속담에는 "어디로 가느냐?" "칸다하르로 간다"라는 말이 있다. 멀고 험난한 여정을 가리킬 때 쓰인다. 나파스의 여정은 더 이야기할 나위가 없다.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는 내레이션대로다. "난 항상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감옥을 모두 피해왔지만, 오늘은 그 감옥들 하나하나에 다시 갇힌다. 내 여동생 단지 너를 위해."


눈 앞에 펼쳐진 고향은 감옥이 따로 없다. 여덟 살이 넘어 집에 갇혀 살아야 할 여자아이들에게 개미처럼 살라는 남교사. 남자아이들은 코란을 외우며 살인 병기로 커간다. 하나같이 극심한 가난에 찌들어 병색이 가득하다. 나파스도 오염된 우물물을 마셔서 배가 아프다. 임시병원을 찾지만, 의사 사히브(하산 탄타이)를 마주할 수도 없다. 장막 뒤에서 어린 길잡이 칵(사도 테무리)을 거쳐 증상을 설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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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파스는 칸다하르로 가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출신 노인의 네 번째 부인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부르카(머리에서 발목까지 덮어쓰는 통옷 형태의 전통복식)를 벗고 재촉한다. "저는 시간이 없어요!" "먼저 부르카를 써요. 명예 문제에요. 우린 독실한 사람들이오. 어떤 남자도 내 처의 얼굴을 봐선 안 되오. 부르카는 장식물이 아니라 가리라고 만든 베일이요." "좋아요, 쓰지요. 하지만 난 당신의 진짜 부인이 아니에요." "그래, 아니죠. 하지만 사람들의 험담을 어찌 당하겠소? 부르카는 장식물이 아니라 내 명예가 걸린 문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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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는 애니메이션 '파르바나 :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은 이런 실태를 동화적으로 표현한다. 원제는 가장이라는 뜻의 'The Breadwinner.' 한 줌의 희망도 품기 어려운 절망적 상황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인내하는 어린 천사의 모습을 그린다. 카불에서 아버지 누룰라(알리 바드샤)와 함께 편지를 읽어주고 대필하는 열한 살 소녀 파르바나(사라 초드리). 누룰라가 탈레반에 끌려가면서 삶은 완전히 뒤바뀐다. 남자 없이 여자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어 가족의 생계부터 막막해진다. 파르바나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소년으로 변장해 가장 노릇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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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인 시장에는 비슷한 처지의 소녀 샤우지아(소마 차야)도 있다. 남자 이름은 델로와르. 파르바나가 자신의 남자 이름으로 오테시가 좋겠다고 하자 피식 웃는다. "너는 남자애도, 여자애도 아니지." 탈레반이 집권한 세상에서 둘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여성도 남성도 아닌 존재가 돼버린다. 정체성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잡일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둘은 잊지 않고 있다. 목적지가 달라 이별하는 순간 본래 이름을 부르며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다. 20년 뒤 달이 바다를 끌어당기는 해변에서 재회하자고 다짐한다. 약속은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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