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콘서트홀·예술의전당 여름축제
클래식 공연계 사라진 여름 비수기
올여름 폭염은 역대급이었다. 2018년과 1994년에 버금가는 무더위였다. 7월부터 8월에 이르는 염천의 나날들에 숨 쉬기 힘들었던 이유는 또 있었다. 지독한 코로나에 마스크를 벗지 못했던 탓이다. 마스크를 쓴 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다. 클래식 음악 공연장이 가장 훌륭한 피서지 중 하나로 각광받았다. 냉방이 잘 되는 공연장에서 마스크를 하고 띄어앉기를 한 청중들이 고단한 현실을 잊고 시원한 음악으로 경험하는 감동의 의미가 더욱 커졌다.
7~8월은 클래식 음악 공연의 비수기라고 불렸다. 휴가 기간이고, 집과 직장이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하는 시즌이기 때문에 공연장이 비게 되고 공연도 없어서다. 클래식 애호가들은 휴가지에 간 김에 감상할 수 있는 평창대관령음악제와 통영국제음악제를 찾았다. 올해 7월 28일 개막한 평창대관령음악제는 메인 콘서트 13회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8월 7일 폐막했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도 7월 TIMF 앙상블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과 꿈의 오케스트라 공연, 8월 백건우와 김선욱이 함께한 솔라시안 유스 오케스트라의 공연 등을 지역 애호가들과 휴가 온 타지역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었다.
기존의 두 축제에 이어 롯데콘서트홀과 예술의전당 같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연장들이 여름 축제의 풍경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엄선된 출연진으로 공연의 질적 수준을 보장하고 해마다 주제를 통해서 일관적인 완성도를 추구하는 이들 여름 축제는 특히 코로나 유행으로 갈 곳 잃은 공연애호가들의 여름 피서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연장 기반 여름 축제는 작년 8월 롯데콘서트홀이 먼저 시작했다. 개관 4주년 기념 ‘클래식 레볼루션 2020 베토벤’이 출발점이었다. ‘클래식 레볼루션’은 해마다 8월 약 열흘의 기간 동안 리사이틀부터 실내악, 협주곡, 교향곡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을 맞이하는 축제다. 지난 8월 13일 시작해 22일까지 펼쳐지는 올해 클래식 레볼루션은 탄생 100주년 피아졸라와 독일 작곡가 브람스가 주제다. 올해 클래식 레볼루션에서는 브람스 교향곡 1번, 3번, 4번(서울시향, 코리안심포니, 인천시향) 피아노 협주곡 1번~2번(선우예권, 이진상), 바이올린 협주곡(김동현), 브람스 현악 4중주 1번~3번, 피아노 5중주, 현악 6중주, 클라리넷 5중주(노부스 콰르텟, 이한나, 박유신, 선우예권, 김한),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김수연, 이진상) 등 브람스의 명곡들을 프로그램에 넣었다. 14일 감상한 김수연과 이진상의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은 독일적인 탄탄한 구성력의 빼어난 연주였고 15일 접한 노부스 콰르텟의 현악 4중주와 피아노 5중주, 현악 6중주, 클라리넷 5중주는 텁텁한 중저역이 돋보인 브람스 실내악의 진수였다. 냉방이 가동되는 공연장에서 듣는 브람스는 오감으로 가을을 떠올리게 했다.
브람스에 이어 19일부터 나흘간 후반부에서는 피아졸라의 음악을 조명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윤소영)를 비롯하여, 리베르탱고(성남시향, 고상지) 망각(고상지, 박규희) 등 대표작들을 들려준다. 피아졸라의 음악세계에 영향을 끼친 작곡가들의 음악도 곁들여진다. 생상스 오르간 교향곡(박준호), 모차르트 오보에 협주곡(함경)을 선보인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이 클래식 레볼루션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뮌스터 출신의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포펜은 나탄 밀스타인, 오스카 셤스키, 조지프 깅골드 등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케루비니 콰르텟의 설립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데트몰트 음대, 한스 아이슬러 음대 등에서 가르쳤고 힐리어드 앙상블,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했다. 클라라 주미 강과 노부스 콰르텟의 스승이기도 하다. 축제기간 동안 연주자들이 포펜과 함께 연주하며 배우는 점도 많을 듯하다.
한편 올해부터 예술의전당의 8월도 음악축제로 물든다. 8월 27일부터 29일까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인춘아트홀에서 ‘2021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가 열린다. 새로운 희망을 뜻하는 ‘NEW HOPE’가 주제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인해 피해가 막심했던 신진 음악인에게 연주 기회를 부여하고 제작사, 기획사, 매니지먼트의 상생과 공연생태계의 부흥을 추진한다. 예술의전당은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와 손잡고 공모를 통해 출연진을 엄선해 사흘간 릴레이 음악회를 기획했다. 축제를 채우는 13개의 개인 및 앙상블 팀은 모두 공모를 통해 선발됐다. 5월 12일부터 10일간 진행된 접수기간 동안 총 206건이 접수됐고 1명의 지휘자와 13개 팀을 선발하여 각각 22대 1, 1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예술의전당이 클래식 음악 생태계의 구성원인 민간 주최사 및 기획사 등과 협업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술의전당은 작년 4월, 6월, 11월에 토론회와 간담회를 열고 코로나로 인한 음악계의 피해와 민간 부문의 어려움을 청취했다. 여기서 뜻이 모아져 음악인과 매개자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 이번 축제를 함께 추진했다.
축제의 오프닝과 피날레는 이승원 지휘로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개막 공연은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가, 폐막 공연은 피아니스트 원재연이 각각 협연한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젊은 지휘자 중 하나인 이승원은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비올라 교수이자 베를린 C.P.E 바흐 예술고등학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다.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악장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제2바이올린 악장 이지혜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악장인 박지윤이 맡았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제2악장 출신 김재원이 부악장을 담당한다. 이외에도 경기필하모닉 제2바이올린 수석 김예원, 하노버 NDR라디오필 비올라 수석 김세준 등 수준 높은 연주자들로 단원들을 구성했다. 주말에는 공모를 통해 14:1의 경쟁률을 거쳐 엄선한 리수스 콰르텟, 이든 콰르텟, 아레테 콰르텟, 앙상블 블랭크, 아르테늄 브라스 밴드 등 13개 연주단체가 콘서트홀과 인춘아트홀에서 오전 11시부터 밤까지 릴레이 음악 축제를 펼친다.
작년 11월 준공한 예술의전당의 막내 공연장 인춘아트홀에서도 축제가 계속된다. 토요일 오전 11시는 클래식 기타의 향연이다. 1부는 김진세, 박지형 기타 듀오가 2부에는 한국계 벨기에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가 관객과 만난다. 이어서 오후 7시 30분에는 피아니스트 김홍기, 바이올리니스트 이우일의 무대가 차례로 펼쳐진다.
축제의 마지막 날인 8월 29일 오전 11시 콘서트홀에서는 조인혁(클라리넷) 박예람(플루트), 윤성영(오보에), 김현준(바순), 김병훈(호른), 박영성(피아노)이 결성한 블라스트 파이브가 목관악기와 피아노의 다채로운 앙상블을 선보인다. 2부에서는 김재원, 이정현(첼로), 이택기(피아노)가 트리오를 선보인다. 일요일 오후 2시엔 인춘아트홀에서 하모니시스트 이윤석과 퍼커셔니스트 박혜지가 연주한다.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는 클래식 레볼루션보다 짧은 사흘간의 축제로 시작했지만 양적 발전도 기대해 본다. 예술의전당은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축제를 정례화하고, 클래식 전용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멀리 여행하기 어려운 시기, 롯데콘서트홀의 클래식 레볼루션과 예술의전당 여름 축제는 수도권 클래식 음악 청중들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다. 이제 클래식 공연계에서 여름이 비수기라는 말은 사라지고 여름 축제의 출연진과 프로그램이 화제로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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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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