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헬퍼봇'이
반복된 삶에서 만난 운명적 사랑이야기
인간에 의한 '기계소외' 우회적 비판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주인공 올리버(정욱진)와 클레어(한재아·오른쪽).(사진출처=CJ ENM)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주인공 올리버(정욱진)와 클레어(한재아·오른쪽).(사진출처=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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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21세기 후반 서울 메트로폴리탄 외곽의 한 낡은 아파트. 이곳엔 주인에게 버려진 인공지능 로봇 ‘헬퍼봇’들이 모여산다. 이곳 주민 올리버는 옛 주인이었던 제임스가 좋아하던 재즈음악을 LP판으로 켜고 화분을 돌보는 것으로 항상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수십년 간 반복된 삶을 살아온 올리버에게 어느날 클레어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클레어는 올리버보다 버전이 한 단계 높은 헬퍼봇이다. 클레어는 충전기가 고장나 이집 저집 기웃거리다 올리버의 도움을 받는다. 그렇게 둘의 만남이 시작된다.


인공지능 로봇 간 사랑을 그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도입부다. 이 작품은 2016년 초연 이후 제2회 한국뮤지컬어워즈 6개 부문 수상, 제6회 예그린어워드 4개 부문 수상 등 창작뮤지컬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올해 개막한 뮤지컬도 인터파크와 예스24 등 주요 예매처에서 각각 평점 9.7점을 기록할 정도로 흥행세를 몰고 있다.

극은 인간에 의한 ‘기계 소외’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성능에서 뚜렷한 차이가 없음에도 단지 버전이 낮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로봇들은 오늘날의 스마트폰과 다르지 않다. 기술 향상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수요를 창출해야 생존하는 기업의 자본 논리에 의해 갈수록 기계들의 버전업은 빨라진다. 이는 인류가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더욱 가속화된 현상이다. 올리버가 매일 LP판을 켜는 것은 어쩌면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향수일지 모른다. 이마저도 헬퍼봇의 자유의지가 아닌 디지털 명령어에 의해 주입된 인간만의 판타지일지 모르지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주인공 올리버(정욱진)와 클레어(한재아·오른쪽).(사진출처=CJ ENM)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주인공 올리버(정욱진)와 클레어(한재아·오른쪽).(사진출처=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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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랑은 다르다. 극 중 인간은 헬퍼봇에 자율적 사랑이 안 되도록 프로그래밍한 걸로 돼있다. 그런데도 올리버와 클레어는 결국 사랑을 한다. 왜일까. 그건 아마 사랑을 정의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리라. 인간이 사랑을 0과 1로 완벽히 정의할 수 있어야 로봇에게도 이를 금지하는 명령어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올리버와 클레어가 알 수 없는 감정에 서로 이끌린 순간, 불완전한 코딩으로 봉인됐던 ‘금기’가 깨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랑에 눈 뜬 올리버와 클레어는 인간이 정한 다른 규율들도 서서히 거부하기 시작한다. 재산 축적과 운전, 반경 15㎞ 바깥으로 외출 등은 헬퍼봇에게 불법이지만 그들은 이를 가볍게 무시한다. 아파트를 뛰쳐나온 둘은 제주도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올리버는 옛 주인을 만나기 위해, 클레어는 자신이 좋아하는 반딧불이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여행을 통해 둘은 서로를 더 잘 알게 된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둘의 관계는 더 깊어진다. 하지만 영원한 사랑이란 없는 법. 갈수록 클레어의 팔다리가 고장나는 빈도가 는다. 내구성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달은 이들은 서서히 이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장면.(사진출처=CJ ENM)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장면.(사진출처=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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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백미는 후반부 기억 삭제 장면이다. 클레어는 망가져가는 자신을 돌보는 올리버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관계를 정리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별 후에도 서로에 대한 사랑은 전혀 식지 않는다. 함께 보낸 소중한 기억들이 그들을 괴롭힌다. 마침내 클레어는 아예 서로가 몰랐던 시절로 메모리를 초기화하자고 설득한다.


‘똑똑’. 극은 다시 충전기를 빌리러 온 클레어의 노크 장면으로 돌아간다. 문을 열어주는 올리버. 둘은 서로 처음 만난 듯 행동한다. 과연 이들은 기억을 삭제했을까, 아니면 간직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들은 서로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 전체를 수백, 수천 번 무한 반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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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영원회귀’라는 사유실험을 통해 "당신이 살아온 삶이 다시 반복된다면, 거기에 동의하겠는가"라고 묻는다. 어쩌면 올리버와 클레어는 이에 기꺼이 동의할 정도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아모르파티(운명애)’적 삶을 반복하고 있는 건지도. 다만 그 반복은 처음과 끝 장면이 미세하게 다르듯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올리버가 좋아했던 재즈처럼 무한한 가능성의 변주이기도 하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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