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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위해, 한국 아버지 위해 달리겠다"

최종수정 2021.08.06 11:15 기사입력 2021.08.0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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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토너 오주한, 케냐서 귀화 도운 오창석 코치 훈련 도중 별세
도핑 징계 과오 딛고 굳은 결심 "가난의 짐 덜어준 한국에 보답"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마라톤에 한국 선수로 참가하는 오주한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마라톤에 한국 선수로 참가하는 오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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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입니다. 한국 이름은 오주한입니다." 2015년 6월, 케냐 출신 마라토너가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기자들 앞에서 한국 귀화 의지를 밝혔다. 마라톤대회를 뛰러 네 번 찾은 게 전부인 나라에 올림픽 메달을 안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이름도 '주한(走韓)'이었다. '한국을 위해 달린다.' 성(姓)은 대리인인 오창석 백석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를 따랐다. 그에게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인연은 2010년 케냐 리프트밸리주 엘도레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발 2100m의 중부 고원에서 오 교수는 2007년부터 마라톤훈련 캠프를 운영했다. 현지 선수들을 지도하며 쏟은 애정은 사제 관계를 뛰어넘었다. 특히 투르카나라는 작은 마을에서 염소들과 함께 뛰었다는 오주한을 아들처럼 예뻐했다. 체계적인 주법을 가르쳐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냈다.

오주한은 이듬해 10월 경주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9분23초로 정상에 올랐다. 목장에서 6년간 월급 20달러(약 2만3000원)를 받던 그에게 상금 5500만원이 주어졌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께 염소와 소를 사드렸어요. 지금은 100마리 이상으로 늘었죠. 동네 사람 모두가 부러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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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은 가난의 짐을 덜어준 한국에 보답하고 싶었다. 오 교수는 한국 국적으로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자고 제안했다. 제자의 성공과 한국 마라톤의 부활을 모두 이루고자 했다. 고향인 충남 청양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오주한의 본적은 청양이다. 충남에서 가장 침체하고,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런데 스포츠 마케팅으로 큰 시너지 효과를 낸다고 한다. 이런 게 활성화돼야 청양의 요식업도 먹고 살 수 있다."


귀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적잖은 육상인들이 민족스포츠를 훼손한다며 반발했다. 국제육상연맹으로부터 도핑 징계를 받은 과오도 발목을 잡았다. 오주한은 2012년 도핑테스트 양성반응으로 자격정지 2년 징계를 받고 2015년 1월에야 복귀했다. 대한체육회 대표 선발규정에는 "징계 해지 뒤 3년이 지나야 대표선수가 될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다. 그렇게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대표 발탁은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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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목에 태극문양의 링을 차고 뛸 만큼 한국에 애정을 보인 오주한은 크게 실망했다. 한동안 마라톤을 잊고 살았다. 연일 술을 마시며 신세를 한탄했다. 그는 오 교수의 도움으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케냐까지 찾아와 다시 귀화를 추진하겠다고 설득해 신발 끈을 찬찬 동여맸다. 오주한은 지금도 그때 약속을 똑똑히 기억한다. "(2018년) 동아마라톤대회를 잘 뛰고 합당한 기록을 내자. 그래야 귀화를 반대하는 분들의 마음까지 돌릴 수 있다."


오주한은 2시간6분57초로 결승선을 통과해 월계관을 썼다. 그리고 그해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듬해 경주국제마라톤에서 2시간8분42초를 기록해 2020 도쿄올림픽 출전기준도 통과했다. 엘도레트에서 레이스에 매진하며 새로운 역사를 준비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근력과 지구력 모두 크게 향상했고, 스피드 역시 상승곡선을 탔다. 그런데 직접 훈련을 진행하던 오 교수가 지난 5월 풍토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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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빠진 오주한은 주저앉지 않았다. 오 교수와의 약속만 생각했다. 훈련 강도를 높이며 메달의 꿈을 키워갔다. 오 교수는 생전 오주한에 대해 "일찌감치 기준 기록을 통과하고 도쿄올림픽을 준비했다. 3위를 노릴만하다"라고 말했다. 경기는 8일 오전 7시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다. 오주한은 섭씨 30도를 넘는 더위와 싸우며 42.195㎞를 달려야 한다. 잘 이겨낼 것이다. 하늘에 계신 한국인 아버지가 열렬히 응원할 테니.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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