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국민들이 손해 보는 거죠.”
예전 한 현직 판사가 로클럭(법원 재판연구원) 제도 도입 등 판사 임용 시스템이 바뀐 것에 흥분하며 했던 말이다. 과거에는 고등학교 때 문과 인재들이 사법시험을 치르고 사법연수원 성적 최상위권자들이 판사가 됐다. 그런데 로스쿨이 도입되고 법조일원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일정 기간 변호사로서 활동한 뒤에야 판사에 임용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뀐 데 대한 한탄이었다.
사실이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1000명을 넘어선 이후로는 사법시험 성적과 사법연수원 성적을 합산한 성적에 따라 대형 로펌에서 미리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로펌으로 직행하는 일부 성적 우수자를 제외하면 1등부터 100등까지 판사, 200등까지 검사를 지원하는 게 관례였다.
판사의 얘기인즉, 과거에는 정말 머리 좋고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이 판사가 돼서 야근도 마다 않고 20대, 30대 청춘을 희생해가며 국민들의 재판에 전력을 다했다. 이제 그런 시대가 끝났으니 그로 인한 손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라는 것. 솔직히 판사의 말을 듣고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공부 잘 한다고 꼭 훌륭한 판·검사가 되는 건 아니겠지만 다른 사람이 놀 때 열심히 공부한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건 사실 아닌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최근 검찰 직제 개편을 통해 일선 검찰청의 형사부 중 ‘6대 범죄’를 수사할 수 있는 형사부를 말(末)부 한 곳으로 축소시켰다. 나머지 대다수 형사부 소속 검사들이 직접 수사를 할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김오수 검찰총장이 ‘국민중심 검찰’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조직을 재정립하겠다며 형사부 소속 검사들을 비수사 부서인 공판부로 무더기 이동 배치시키려 하고 있다. 현재 1명의 공판부 검사가 2개 재판부를 맡고 있는 것을 공판부 검사 수를 늘려 1명이 1개 재판부만 맡도록 하겠다는 건데, 결국은 수사하는 검사를 줄이겠다는 얘기다.
공소유지가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갑자기 공판부 검사를 지금의 2배로 늘려야 할 만큼 절실한 상황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건일수록 공소유지는 수사를 한 검사가 직접 법정에 들어가 직관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나 박 장관이나 정작 정권과 관련된 주요 사건 수사를 담당한 검사들은 인사 때 죄다 멀리 전보를 보내 직접 공소유지를 맡기 어렵게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공소유지를 강화하겠다고 나서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과거 검찰이 정권에 기대 국민보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과오를 저질러온 탓에 개혁 대상이 된 건 부인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검사는 인권보호기관이고 수사에 있어서는 최고전문가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년 이상 수사만 해온 검사들한테 수사는 하지 말고 공소유지만 하라는 건 인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임용된 수사처검사 중에 수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 고작 4명뿐이라 법무연수원에서 속성으로 수사실무를 배우고 있는 상황인데, 이미 훈련된 수백명의 검사들은 수사를 못하게 막는 게 과연 바람직한 개혁의 방향인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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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검찰의 수사력이 약화될 게 분명한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수해야 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종합병원의 비리나 횡포가 심해 의료개혁에 나섰다면 비리의 원인을 찾아 개선 방법을 찾아야지 전문의들을 수술하지 못하게 하고 수술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초짜들에게 메스를 맡긴다면 환자들은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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