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이 시대정신이라고 한다. 대선에 도전한다는 사람 모두 출마의 변으로 공정을 말한다. 2030세대 공정론에 영향받은 바 클 것이다.
그들이 (기성세대 입장에서) 꽤 당혹스러운 내용을 담아 공정을 중시하는 이유에 대해선 많은 분석이 있다. 돌파구 없는 미래 앞에서 기댈 것이라곤 정형화되어 공정한 듯 보이는 ‘게임의 룰’밖에 없기 때문이란 게 그중 하나다. 만약 이것이 올바른 분석이라면, 2030세대의 공정론이란 사실 별 것 아니다. 생존을 위협받는 환경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태도를 갖게 된다. 586 세대가 청년일 때 지금만큼 취업이 어렵고 내집 마련이 불가능했다면 그들의 시대정신도 공정이었을 것이다.
이런 시각을 뒷받침해주는 현상이 2030세대의 공정론과 맞물린 젠더·계급 갈등이다. 청년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세대 내부에서 성별이나 계급으로 나뉘어 갈등하는 건, 그들 서로가 작은 파이를 놓고 다퉈야 하는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갈등 구조에 개입해 무엇이 옳은지 따지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남성의 역차별 주장에 호응한 국민의힘은 이대남(20대 남성)의 표를 얻고 이대녀의 그것을 잃었다. 대선 주자들이 공정을 수시로 되뇌면서도 정작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지 않거나(못하거나), 뾰족한 질문에 두루뭉술 넘어가려는 건 이런 정치적 득실 계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차별받는 소수인가. 그렇게 본다면 여권을 신장하는 게 공정이라고 대선 주자는 밝혀야 한다. 극단적 페미니즘은 극복 대상인가, 사회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인가. 게임의 룰만 지켰다면 그 결과는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공정론에는 동의하는가. 세상이 그렇게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고 ‘스윙보터’라 불리는 2030세대에게 따끔하게 충고할 용기는 있는가. 2030세대가 어떤 것을 공정이라 부른다고 해서 곧바로 진리가 되는 건 아닐 터인데, 인생 선배인 대선 주자들은 ‘너희의 공정을 모두 받아줄게’라는 말만 미소 지으며 반복한다.
이대남의 역차별 주장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드센 이대녀의 공격이 두려워 침묵하는 것인가. 공공장소에서 쓰러진 여성을 아무도 구하려 들지 않았다는 기사에 이대남들은 "괜히 나섰다 여자가 ‘내 몸을 만진 것 같다’고 하면 철창행"이란 댓글을 단다. 그들의 인생은 양성평등이란 비전이 아니라 곰탕집 사건 같은 현실에 좌우된다. 이것은 유치한 피해의식인가 합리적 상황인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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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정면 승부하는 정치인은 이준석 정도밖에 없다. 최소한 그는 실재하는 사회현상을 회피하지는 않는다. 그의 문제의식과 해법이 옳으냐 아니냐는 달리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정면 승부는 승패라도 결정하지만 회피 전략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준석의 능력 만능주의 역시 단골 비판 소재다. 시험이 공정을 담보하느냐, 그 능력은 어디서 온 것이며 그것은 과연 공정한 것이냐고 따진다. 그런데 이준석식 능력이 아니라면 그들이 생각하는 공정한 기준이란 무엇인가. 시험을 대체할 어떤 공정한 게임의 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이준석을 비판하는 건 지금 이대로의 세상에 만족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공정론으로 무장한 2030세대 역시 자문해야 한다. 그들은 왜 세대 내부에서 공격 대상을 찾는가. 자신들을 살벌한 공정의 정글로 내몬 건 누구인가. 대선 주자들의 침묵은 마침내 진실을 깨우친 2030세대가 힘을 합해 총구를 돌릴까 두려워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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