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무역장벽 탄소세②]EU發 보호무역에 중·러 직격탄…보복 악순환 부른다
EU, WTO 회원국 합의 없이 밀어붙여…WTO '내국민 대우' 원칙 위반
중·러 등 후발 산업국 충격 커, 보복관세 등 무역전쟁 빌미 우려
우리 정부, 강력대응 보다 수위조절…"대(對)EU 압박 수위 높이고, 산업계 지원해야"
[세종=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유럽연합(EU)이 오는 14일 공개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신(新) 무역전쟁'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EU의 탄소국경세가 선진 공업국으로 분류되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공장'인 중국과 인도 등 수입품에 부과되는 등 역내 산업 보호수단으로 쓰이면서 이들 산업국의 보복조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특히 철강업계의 피해가 예상됨에 따라 정부가 대(對)EU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일각에선 탄소감축이 가야할 길은 맞지만, 선진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국내 일부 친환경론자들이 지나치게 편승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EU, 탄소관세 도입시 WTO 협의 필요…내국민 대우 원칙 위반"=탄소국경세가 도입될 경우 가장 큰 쟁점은 EU 무역 파트너들이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13일 "EU가 CBAM을 도입하려면 WTO 체제 하에서 회원국들과 새로운 관세 체계를 만드는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EU는 그러나 글로벌 국가 간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탄소관세를 밀어붙이는 '보호무역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CBAM은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 함량을 조사한 후 역내 제품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을 경우 초과분에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2023년 도입 후 2026년 전면 시행된다.
전문가들은 EU의 탄소관세가 국산·외산 차별을 금지하는 WTO의 내국민 대우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높다고 본다. 탄소 측정 방식, 탄소관세 사용처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EU의 이 같은 일방통행은 WTO 분쟁 기능의 형해화를 틈탄 것으로 향후 중국, 인도, 러시아 등 개도국의 무역보복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 교수는 "EU의 탄소관세 부과는 WTO 내국민 대우 원칙 위반에 해당, 제소로 이어질 사안이지만 EU는 WTO 상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탄소관세를 밀어붙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결국 다른 나라들은 WTO 제소 대신 무역보복 조치를 택할 것이고 이는 새로운 무역전쟁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러시아 충격 클 것…"우리 정부 미온적" 지적도=정부는 EU의 CBAM 도입으로 인한 산업계 충격을 우려해 다각도로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강력 대응 보다는 일단 수위 조절에 나서는 상황이다. CBAM의 규제 수준이 당초 예상보다 완화될 수 있고 중국, 인도, 러시아 등 후발 산업국의 충격이 우리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돼 상황을 지켜본다는 판단이다. EU의 탄소관세 부과가 오히려 유럽 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의 점유율을 빼앗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우리보다 산업계 충격이 더 큰 중국, 러시아 등이 EU를 WTO에 제소하거나 보복무역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일단 CBAM 세부안 공개 후 여타 국가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대응수위를 결정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우리 정부의 인식이 다소 안이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내 철강업계의 경우 수출액의 최대 10% 이상을 탄소관세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까지 올 수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문제제기로 산업계의 부담을 경감시켜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부가 탄소관세에 강력 대응하지 않을 경우 국내 일부 환경론자들에게 오히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국내 산업계의 현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유럽의 보호무역 수단인 탄소관세를 고리 삼아 우리 기업의 탄소감축 속도 상향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선 기업에 탄소세를 부과해 얻은 수익으로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탄소세법안(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안)'까지 발의된 상태다.
◆탄소장벽 쌓는 EU, 역내 기업에 13조 투입=EU는 이미 탄소국경세를 빌미로 탄소장벽을 쌓기 시작했다. EU혁신펀드를 설립, 역내 기업의 탄소감축 기술 사업화·상용화에 2030년까지 100억 유로(약 13조6000억 원)를 쏟아붓기로 했다. 호주 정부도 기업의 저탄소 배출 기술 개발에 2030년까지 180억 호주달러(약 15조5000억원)를 투입한다. 반면 우리 산업부는 탄소중립 예산 규모 조차 별도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지원 규모도 미미하다.
산업계에선 정부가 EU의 탄소국경세 도입이 이중규제이자 WTO 규정 위반이란 대응논리를 수립, 적용 예외를 받아내고 내부적으로 산업계의 탄소감축 기술개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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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관계자는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의 규제환경 변화에 따라 국가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기업에 대해서도 경쟁국이나 경쟁사 수준만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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