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유동자금, 금융사 신탁상품으로 쑥(종합)
저금리·저성장 기조 타고 금융사 신탁 인기
지난해 은행권 신탁상품 투자금 500조 육박
4대銀 신탁수수료 이익도 전년 比 10.4% ↑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펀드 불완전판매 사태와 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금융권 신탁상품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수탁고가 꾸준히 늘면서 수수료 수익도 급증하는 추세다. 지속적인 저금리·저성장 기조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자금이 신탁상품으로 몰려든 결과로 풀이된다.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은행업계에 들어온 신탁상품 투자금은 492조6000억원에 달해 전년 480조4000억원보다 12조2000억원(2.5%) 늘어났다. 2016년 355조원에 불과했던 걸 고려하면 38.4% 증가한 셈이다.
신탁이란 고객이 신뢰할 만한 개인이나 기관(수탁자)에 재산권을 이전·처분하는 제도를 말한다. 수탁자는 운용지시에 따라 수익을 내거나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재산을 관리하거나 처분한다. 신탁회사의 전문적인 운용능력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게 장점으로 국내에서는 총 61개가 신탁업을 영위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돈을 받아 운용하고 돈으로 원금과 수익을 돌려주는 금전신탁이 271조9000억원으로 재산신탁(220조5000억원)보다 많았다. 전년 대비 증가세도 금전신탁은 13조원가량(5.3%) 늘었지만, 재산신탁은 오히려 1조8000억원(0.8%) 줄었다. 다만 재산신탁 중에서도 부동산신탁 상품은 50조2000억원에서 51조1000억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전체 신탁시장 규모로 봐도 2016년 715억원에서 지난해 말 1039억원으로 매해 성장하고 있다.
은행업권이 내놓는 수탁상품에 꾸준히 돈이 몰리면서 수수료 이익도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1분기 기준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대 지주의 신탁 관련 수수료 이익은 3613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3271억원보다 10.46%(342억원) 불어났다. 특히 KB금융지주가 309억원(22.6%) 늘어난 1674억원의 수수료 이익을 기록해 규모와 증가세가 가장 컸다.
지난해 불완전 판매와 환매중단 사태로 신탁상품의 판매가 제한됐던 환경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금융당국은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라임펀드 사태 등의 후속조치로 은행권의 신탁상품 중 하나인 파생결합증권(DLS)와 주가연계신탁(ELT)등을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했다. ELT는 판매총량까지 제한됐다.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비예금 상품의 판매규제도 전반적으로 강해졌다.
저금리·저성장·고령화로 신탁 매력 ↑
그럼에도 신탁상품이 성과를 거둔 배경에는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와 달리 수익률이 낮거나 변동성이 큰 상품이 많아 운용처가 마땅하지 않은 자금이 신탁상품으로 유입됐다는 뜻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인투자자의 직접 투자 열풍으로 상장지수펀드(ETF)신탁 상품에 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면서 "자산관리에 활용할 수 있는 관련 상품의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직접투자를 하지 않는 고객은 창구에서 신탁형 ETF를 많이 찾았다"고 귀띔했다.
금융사 입장에서도 저금리 기조 속에서 비이자이익을 확대가 절실한 만큼 신탁상품 출시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은 지난해부터 관련 신탁상품을 출시하며 적극적으로 고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신한은행은 사전증여와 장기투자, 절세가 가능한 ‘S 라이프 케어 증여신탁’을 지난달 출시했다. 기존 증여 신탁의 운용자산에 상장지수펀드(ETF)를 새로 편입해 만든 상품이다. 관련 마케팅도 꾸준히 실시되고 있다. 하나은행은 이날 김상희 한국 연예인 한마음회 이사장과 리빙트러스트 계약을 맺는 등 셀럽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리빙트러스트는 자산관리 후 유고 시 원하는 자에게 상속하는 신탁상품이다.
고령 인구의 증가도 신탁상품의 매력을 높인 배경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 1월 발표한 ‘고령화시대 신탁업의 중장기 발전 전망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화는 신탁 자산관리 발전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다. 노후대비 연금수요가 큰 고령자는 재산소득을 현금으로 바꿀 필요가 있는데, 신탁이 종합적인 자산관리 서비스의 성격을 가져 매력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재산권 이전이 가능해 상속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장점으로 꼽혔다.
금융당국은 고령화 심화에 따라 신탁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 18일 금융위원회는 ‘신탁업 종합재산관리 기능 강화’ 방안을 추진해 성장동력을 확충한다는 방침이다. 노후 자산관리 니즈에 부응해 신탁업의 종합재산관리 기능을 강화하고 고령층 특화상품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신탁재산 범위를 확대하고 다양한 구조를 허용해 시장 자체를 노년 대비 종합재산관리제도로 개편하는 게 목적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텀블러에 담아 입 대고 마셨는데…24시간 지난 후...
다만 은행업권이 바라는 대로 토지신탁과 재신탁 영업이 가능해질지는 미지수다. 토지신탁은 수탁자가 토지를 받아 개발·관리한 뒤 돌려주는 사업을, 재신탁이란 수탁자가 동의를 얻어 제3자에게 다시 신탁을 맡기는 제도를 말한다. 토지신탁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개발사업 주체가 영위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행정지도로 금지하고 있다. 재신탁의 경우 자본시장법상 불가능하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