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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코로나19 방역 총괄' 윤태호… "부끄럽지 않게 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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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겸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 (사진제공=보건복지부)

윤태호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겸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 (사진제공=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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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춘희 기자] "(방역 상황에 대해) 몇 점이라고 말씀드리긴 어렵다. 그래도 외국에 나가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대응을 해왔다."(윤태호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겸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


코로나19 방역의 총괄 대응을 맡아온 윤태호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겸 코로나19 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이 오는 30일을 마지막으로 3년3개월의 임기를 마무리한다.

윤 정책관은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퇴임 전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임기 동안의 소회를 밝혔다. 윤 정책관은 부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로 일하던 중 2018년 3월 고위공무원 개방형 직위로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에 임명됐다.


윤 정책관은 지난해 1월20일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날부터 바로 코로나19 대응에 투입됐다. 이어 네번째 확진자가 발생하며 중앙사고수습본부가 발족한 1월27일부터는 당연직으로 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을 맡아오고 있다. 코로나19 국내 발생의 처음부터 계속해온 국내 코로나19 대응의 산 증인 격이다.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의 임기는 3년이다. 윤 정책관은 원래대로라면 지난 3월18일로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새로 취임한 권덕철 복지부 장관이 그를 붙잡았다. 윤 정책관은 아내와 상의 끝에 이달 말까지로 임기를 연장하기로 했다. "6월말쯤 되면 어느 정도 정리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게 임기 결정의 이유였다.

하지만 아직 코로나19는 종식되지 않은 상태다. 이날 기준 신규 확진자가 이틀 연속 600명대를 기록했고, 백신 1차 접종률은 아직 30%를 넘지 못했다.


윤 정책관은 이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국민들의 협력, 의료·방역 인력의 노고, 공무원들의 헌신 덕분에 우리나라가 일상생활과 방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현재 우리 방역관리 상황을 '몇 점'정도로 평가할 수 있냐는 질문에 "방역총괄반장이 몇 점 줬다고 기사가 나가는 것 아니냐"고 손사레를 치면서도 "외국에 나가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대응해왔다"는 자부심을 밝힌 이유다.


윤 정책관은 향후 코로나19의 대응에 대해서는 "백신 접종이 계속 이뤄지면서 출입국에 대한 완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변이가 동반될 가능성이 있어 이와 관련해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이어 백신 접종률의 목표 지점인 70%에 도달했을 때에 대한 준비도 지금부터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거리두기 등 비약물적 개입이 최소화되면 코로나19는 매년 예방접종을 맞는 계절독감처럼 갈 수 있다"며 "한 차례 더 거리두기 체계를 개편하게 되면 '거리두기'라는 단어를 써야 할지, '일상회복'이라는 단어를 써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장기적 관점을 갖고 어떠한 정책을 펼쳐나갈지 심도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23일 서울 송파구청에 마련된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23일 서울 송파구청에 마련된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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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책관은 500여일간 코로나19 대응을 이어오면서 꼽은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첫 확진자 발생을 꼽았다. 그는 "중국 우한을 중심으로 원인불명의 폐렴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은 접하고 준비하고 있었다"고 당시의 기억을 전했다.


윤 정책관은 다른 기억에 남는 두 순간으로는1차 유행과 3차 대유행을 꼽았다. 모두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병상 확보와 관련해 대혼란이 일어났던 순간들이다.


특히 그는 3차 대유행 때는 두 번의 유행을 거치면서 병상 준비를 철저히 했음에도 현장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미쳐 알아차리지 못한 점이 뼈아팠다고 전했다. 당시 당국은 각 병원으로부터 중환자 병상 중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병상을 다량으로 확보했다. 하지만 실제 대유행이 발생하자 해당 병상이 일반 중환자와 공용으로 쓰이면서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이 대거 부족한 상황이 벌어졌다.


윤 정책관은 "정말 뼈를 갈아넣어서 일을 했다"며 "시스템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2주간 고생해서 병상을 마련했다"는 기억을 전했다.


사실 이번 코로나19는 그가 재직 중에 맞은 두 번쨰 감염병 사태다. 2018년 9월, 2015년에 이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자가 다시 국내에서 발생했다. 윤 정책관은 2015년 메르스 대유행 당시 대한예방의학회 '메르스 대응을 위한 역학조사 및 방역활동단 위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메르스 대응 지원단 총괄반장'으로 대응을 이끌며 조기 종식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그때는 백신을 맞는 것처럼 약하게 앓고 지나가는구나 생각했고, 코로나19처럼 엄청난 위기가 올 거라고 생각지는 못했다"며 "메르스는 시범적으로 대응해보라고 했던 것 같다"고 소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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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본업인 공공보건정책관으로서의 직무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공공의료에 대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면서 "코로나19를 통해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어려웠던 부분이 해결되는 측면도 있었지만, 외부의 기대만큼 공공의료가 확충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전했다.


반면 재임 중의 성과로는 중수본 방역총괄반장과 국립중앙의료원 이전을 꼽았다. 윤 정책관은 "방역총괄반장 자리를 맡음으로써 많이 부족하지만 한층 더 성숙할 수 있었던 계기"라며 "국가 위기생활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는 게 의미있었다"고 전했다. 또 2003년부터 18년간 표류해 온 중앙의료원 이전에 대해서도 부지와 이전 계획을 확정한 것에 대해서도 뿌듯함을 드러냈다.


윤 정책관은 임기를 마친 후엔 잠시 휴식기를 가진 후 대학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2학기부터 부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로 교편을 다시 잡는다. 이후 코로나19 대응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에는 "특별히 기여할 건 없겠지만 필요한 일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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