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현충일은 국가마다 모두 기념하는 날짜가 다른 기념일로 미국은 1868년 남북전쟁 전몰 장병일을 기리기 위해 5월 마지막 월요일로 정했다.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는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11월11일을 현충일로 기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매해 6월6일로 정해져 있는데, 음력에서 24절기 중 하나인 ‘망종(芒種)’을 기준으로 삼았다. 1956년 정부에서 현충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할 당시 고려 때부터 망종 전후로 전몰장병에 대한 합동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하여 정했다고 한다.
이 합동제사는 한국사에서 가장 큰 군사적 승리라 평가되는 귀주대첩이 있었던 1019년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고려왕조는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때부터 1019년 귀주대첩까지 무려 26년간 세 차례에 걸쳐 대전을 치르며 국가가 멸망 위기까지 내몰리면서 수많은 장병들이 목숨을 잃은 바 있다.
고려왕조가 이런 위기로 내몰렸던 이유는 당시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국제관계 상황과 맞물려 있었다. 당시 동북아시아는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와 중국의 송나라가 대치하는 상황으로 양국은 고려에 각자 자신의 동맹국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고려왕조는 군사강국인 요나라와 경제강국인 송나라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중립외교를 펴면서 국익을 챙기고자 했지만, 이로 인해 요나라와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993년 요나라는 80만 대군을 일으켜 처음으로 고려로 쳐들어왔고, 송나라와의 단교를 요구했다. 당시에는 국내 왕위계승 문제와 송나라와의 군사적 대치상황에 놓여 있던 요나라의 조급함을 간파한 서희 장군의 외교 담판으로 요나라군을 철수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10년 후인 1003년, 요나라가 내부문제를 정리하고 송나라와의 오랜 전쟁도 승리로 마무리 지으면서 고려의 중립외교는 큰 위기를 맞는다.
요나라의 6대 황제인 성종은 고려에 확실한 태도를 정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이에 고려는 송나라와 표면적으로는 단교했지만 이후에도 비밀리에 사절단을 파견해 줄타기 외교를 벌인다. 이에 요나라는 1010년, 40만 대군으로 고려 전역을 침략한다. 전쟁 준비가 전혀 안돼있던 고려는 참패를 거듭해 수도인 개경이 함락됐고, 국왕인 현종이 전남 나주까지 피란하면서 국가 멸망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고려의 중립외교는 1019년 귀주대첩의 승리로 요나라의 전력을 무너뜨린 이후부터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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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의 유래와 얽힌 이 역사는 미국과 중국 간 분쟁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21세기 한국의 현재 상황 또한 돌아보게 한다.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강력한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나라의 중립외교란 어디에서도 설 자리가 없다는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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