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유통업계에서 남혐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GS리테일이 남혐 포스터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뒤 모든 유통업체들은 광고 이미지에 손가락 모양을 빼거나 수정, 사과하고 나섰다. 몇몇 식음료 업체들은 광고 이미지를 2030 세대 직원들에게 회람하고 남혐, 여혐 논란이 있을 만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남혐, 여혐을 비롯해 세대 간 논란 등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다. 단순한 대결 구도를 넘어선 갈등은 기업에 대한 화풀이로도 이어진다.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거친 언사로 상대방과 다툼을 벌인다. 처음에는 손가락 모양이 문제가 되더니 이제는 광고 문구와 이미지 배열 등 의미 없는 사물의 나열에서 의미를 찾아나서는 행위가 시작됐다. 아무 생각 없이 보던 사람도 설명을 듣다 보니 헷갈리기 시작한다.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는지 GS리테일의 새 광고에서는 ‘WEE_K’라는 문구가 문제가 됐다. 아주 작다는 뜻을 가진 WEE를 K와 띄어 쓰며 한국 남성의 성기가 작다는 의미로 띄어 쓴 것 아니냐는 지적이 시작되더니 이제는 대부분이 ‘그런 의도인 것 같다’는 반응으로 점철되고 있다. 맥주 안주가 나열된 그림에서는 땅콩과 소시지가 문제가 됐다. 왜 하필 맥주안주 이미지에 땅콩과 소시지를 넣었냐며 남혐 광고로 낙인 찍고 있다.
듣다 보면 그럴듯하지만 이정도면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싶다. ‘WE_EK’라고 띄어 썼다 치자. EK는 서양에서는 독일 나치의 철십자 훈장을 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치 철십자?’ 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W_EEK’라고 띄어 썼다면 EEK가 놀람, 두려움을 뜻하니 공포체험 정도의 광고에 어울릴 것이다. 하필 맥주 안주로 땅콩과 소시지냐는 지적은 굳이 반문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직 땅콩과 소시지를 불매하자는 이들은 없다.
남혐 논란이 심각해진 뒤 GS리테일은 관련 직원을 대기발령 내린 뒤 해당 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내부적으로 의도적으로 남혐 이미지를 삽입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해당 디자인 직원은 징계를 받았고 마케팅 팀장은 보직해임돼 일반 팀원으로 강등됐다. 여러가지 내부 사정이 작용했겠지만 누군가의 징계로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렇다 보니 마케팅 담당 직원들은 매일 같이 각종 이미지와 문구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볼 때 문제 없어도 누군가가 볼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유통업계 한 임원은 "남혐 논란이 불거진 대상들을 놓고 내부 직원들과 면밀하게 회의를 진행했지만 우리도 내부에서 미리 잡아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젠더 갈등은 이제 기업들에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리스크로 자리 잡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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