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 근무하는 '초단기 일자리' 늘어
4월에만 전년 대비 28% 폭증
獨 등 일부 유럽 국가선 이미 '미니잡' 활성화
고용률 늘었지만 노동의 질 악화됐다는 지적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최근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근무하는 '쪼개기 알바' 일자리가 늘고 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최근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근무하는 '쪼개기 알바' 일자리가 늘고 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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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배달 파트너, 쪼개기 알바 등 이른바 '초단기 일자리'가 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내수 산업 회복이 부진한 가운데, 고용주들이 근로자의 근무 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는 셈이다. 독일 등 일부 선진국에서 확산한 '미니잡(Mini-job·초단기 알바)'이 국내에서도 대세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최근 쿠팡이츠, 배달의민족, GS리테일 등 국내 유명 배달업체들은 경쟁적으로 '배달 파트너'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배달 파트너는 업체에 고용돼 시급을 받고 일하는 게 아닌, 배달 일감을 수주한 뒤 건당 보수를 받는 초단기 아르바이트다.

일감을 선택하면 배달 파트너가 지정된 장소에 있는 배달 물품을 픽업, 고객에게 배달하는 방식으로, 플랫폼에 파트너로 등록하는 간단한 절차를 거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데다 배달 수단도 자동차부터 오토바이, 자전거, 도보 이용까지 각양각색이다.


배달 파트너 수는 최근 1년 동안 크게 증가했다. 배달의민족 파트너 가입자 수는 지난 2019년 말 약 1만명에서 지난해 말까지 5만명으로 5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GS리테일이 운영하는 '우리동네딜리버리'는 지난해 12월까지 1만명이 넘는 가입자 수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 4월에는 7만명으로 폭증했다.

배달 파트너는 일반인이 어플리케이션(앱)에 파트너로 등록된 뒤 자신이 원하는 일감을 받는 방식이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배달 파트너는 일반인이 어플리케이션(앱)에 파트너로 등록된 뒤 자신이 원하는 일감을 받는 방식이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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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쪼개기 알바'라는 신개념 아르바이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쪼개기 알바는 아르바이트생 한 명에 해당하는 근무 시간을 쪼개 여러 명을 고용하는 형태로, 만일 기존 1명이 주 30시간을 근무했다면 3명을 뽑아 각각 주 10시간씩 일하도록 하는 계약 방식이다.


쪼개기 알바는 인건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안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주 15시간 미만 근무 노동자에게 유급휴일이 적용되지 않는 점에 착안, 초단기 일자리를 여러 개 만드는 방식으로 주휴수당 지급을 회피하는 것이다.


초단기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다 보니, 전체 취업자 수가 늘어나는 상황임에도 고용의 질은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6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동향'을 보면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65만2000명 늘어난 2721만4000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주당 1~17시간 일하는 '초단기 일자리'도 함께 폭증했다. 초단기 일자리는 전년 대비 46만3000명 증가해 28% 가까이 늘어났다. 초단기 일자리가 전체 근로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도 전년(6.3%) 대비 1.5%포인트 상승한 7.8%를 기록했다.


국내 일자리 시장에도 이른바 '미니잡'이 확산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미니잡은 독일 등 노동 유연화가 이뤄진 일부 유럽 국가에서 주로 나타나는 아르바이트로, 월 400유로(약 55만원) 이하를 버는 초단기 일자리다.


미니잡의 대표격인 독일은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간 점진적으로 이뤄진 '하르츠' 노동 개혁을 통해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고, 사회보장제도를 개편했다. 그 결과 초단기 시간제 일자리인 미니잡이 활성화됐고, 고용률도 크게 증진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지난 2019년 독일의 고용률은 76.7%로 유럽연합 27개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간 시행된 노동개혁인 '하르츠 개혁'을 통해 독일 일자리 시장에서는 미니잡이 크게 늘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간 시행된 노동개혁인 '하르츠 개혁'을 통해 독일 일자리 시장에서는 미니잡이 크게 늘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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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니잡이 단순 일자리 숫자만 늘렸을 뿐,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은 격하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독일의 사회·노동정책 싱크탱크인 '한스뵈클러재단'은 미니잡 노동인구 가운데 약 44%는 독일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재단 소속 알렉산더 슈타인 박사는 "고용률을 높이겠다는 특정 숫자에만 몰두하면 안 된다"라며 "정부의 역할은 숫자가 아니라 노동자의 삶의 질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초단기 일자리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수입원이 필요한 취약 계층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옹호론도 나왔지만, 전체 근로자의 삶을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방학 기간을 틈타 쪼개기 알바를 해봤다는 대학생 A(24) 씨는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알바 하나 찾기 힘든 상황인데 쪼개기 알바라고 해도 용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생겨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라며 "물론 쪼개기 알바가 너무 많이 생기면 전체 일자리의 질은 나빠지겠지만,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한 구직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청년유니온'은 지난해 기자회견을 열고 "주당소정근로시간 15시간 미만과 이상 사이 임금 차별을 해소할 수 있도록 주휴수당을 기본급화 해달라"고 촉구했다. / 사진=연합뉴스

시민단체 '청년유니온'은 지난해 기자회견을 열고 "주당소정근로시간 15시간 미만과 이상 사이 임금 차별을 해소할 수 있도록 주휴수당을 기본급화 해달라"고 촉구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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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직장인 B(31) 씨는 "어떤 신조어를 만들든 초단기 아르바이트는 계약직이나 임시직만도 못한 더 열화된 고용 형태"라며 "이런 고용 형태가 일자리 시장의 대세가 되면 노동자들은 더욱 빈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회사원 C(28) 씨는 "이런 일자리를 찾게 되는 사람들도 당장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생활비가 부족한 이들"이라며 "초단기 일자리의 고착화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또 다른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본다"고 우려를 전했다.


한편 국회에서는 늘어나는 초단기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지난달 5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국회의사당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 쪼개기 알바 방지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류 의원은 이날 "단순히 노동 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유급휴일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휴식권에 대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며 "사업자에게 초단시간 노동자 고용을 확대할 이유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고 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류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유급휴일 적용제외 규정을 삭제하고, 주당 15시간 미만 노동자에게도 주휴수당을 지급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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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 또한 "(주당 노동시간) 15시간이라는 커트라인이 생긴 것은 짧은 시간의 노동은 생계 목적이 아니라는 시대착오적 판단 때문"이라며 "노동의 가치를 시간에 따라 다르게 부여하는 차별적인 대우를 버려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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