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지나도 불변 '한지' 인간의 진정성 담겨"
전통한지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단장 이배용
시간·정성 품 많이 드는데 가격 비싸 외면…젊은 장인도 실종
한번 잃어버리면 복원하기 어려워 "속성 알면 누구나 감탄"
한지는 10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그만큼 질기고 찢어지지 않는다. 천연재료만 사용해 냄새도 향긋하다. 주원료는 닥나무와 잿물, 닥풀(황촉규). 닥나무 껍질이 벗겨진 백피를 잿물에 삶아 닥섬유로 만든다. 이를 닥풀이 들어간 물에 섞은 뒤 발로 뜬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외발뜨기를 했다. 사방으로 발을 흔들어 물은 빼고 섬유가 서로 얽히게 한다. 한지의 내구성과 보존성이 중국 화지나 일본 선지보다 빼어난 비결이다. 통일신라 시대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으로 인정받은 만큼 독보적인 품질을 자랑한다.
그러나 한지의 현실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대표성과 정통성을 지닌 지역에서조차 관련 문화가 쇠퇴하고 있다. 가장 발목을 잡는 요인은 높은 가격. 복지관이나 문화센터 등이 서예를 저렴한 가격에 교육하면서 장당 100원도 되지 않는 선지부터 찾는다. 한지 공예 붐도 가라앉은 지 오래다. 제작에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만큼 가격대가 높게 형성돼 인기는 금세 시들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대사관·한국문화원 등에 한지 소재 소비 물품을 보급하고, 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학교 등에 한지 상장 약 2만매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부흥까지 유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사이 명맥을 이어나갈 젊은이들이 사라져 남은 공방은 20곳에 불과하다.
이배용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경험에서 비롯된 믿음이다. 앞서 그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으로 이끈 ‘한국의 서원’과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은 여전히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달 전통한지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단장을 맡아 각종 자료 수집에 나서고 있다. 이 단장은 "한지 업계가 어려운 만큼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국가적 목표로 삼고 세계의 신뢰를 얻겠다"며 "이는 낙후한 현실을 개선하고 효과적인 부흥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통문화의 보존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모두 함께 응원하고 지켜나가야 한다."
-인류무형유산 등재 시점을 언제로 보고 있나.
"이르면 2024년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체계적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장인, 학계 등이 합심해 열정을 쏟아내야 가능하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모두의 지혜를 모으고 있다."
-한지는 가격경쟁력이 낮다. 등재만으로는 부흥을 기대하기 어려울 텐데….
"충분한 계기는 마련될 수 있다. 장인들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그만큼 단가는 낮아진다. 한지를 쓰는 문화도 조성될 테고. 사실 컴퓨터 작업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얼마나 소중한 전통문화인지 전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속성을 알면 누구나 감탄하게 마련이다. 종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 경이로운 문화를 국가적 캠페인으로 알리고 싶다."
-한지의 어떤 점에 매료됐나.
"인간의 진정성이 담긴 종이더라. 제조 과정부터 자연의 맑은 정신을 거스르지 않는다. 천연재료가 재래식 제조를 거쳐 부드럽고 견고한 종이로 탈바꿈한다. 여기에 담긴 선조의 마음과 생각이 바로 겨레의 얼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그 밑바탕을 만들어온 장인들이 존경스럽다. 우리 역사를 지켜온 숨은 주체들이다."
-중국 선지와 일본 화지는 이미 2009년과 2014년에 각각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확실히 늦은 감이 있다. 지난달 전통한지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단 발대식에서도 많은 분께서 진작에 등재돼야 했다고 한목소리를 내셨다. 그만큼 우수성은 잘 알려졌으나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서예를 배우거나 한국화를 그리는 학생부터 줄었다. 이화여대만 해도 한국화 전공자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대다수가 현대미술에 치중한다. 활용도가 떨어지다 보니 공방에 쌓이는 한지만 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 장인의 생업은 물론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는 사업으로 전개해야 한다."
-한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뒤 종갓집 문화를 알아보고 있었다. 경북 문경 등지에서 자료를 조사하다 한지의 우수성에 대해 알게 됐다. 역사와 품질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한지대전’을 만든 김형진 국민대 임산생명공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로 다양한 기능성까지 확인해 등재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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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보이는데….
"실제로 우리 문화가 우수하니까(웃음). 민족의 자긍심이 고취된다. 하루아침에 돈으로 만들 수 없다. 오랜 역사를 통과하며 지금에 이른 것이다. 잃어버리면 복원하기 쉽지 않다. 모두가 애정을 갖고 아끼며 보존해야 한다. 뜨거운 국민적 성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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