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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이건희 컬렉션’, 기증정신을 살리려면

최종수정 2021.05.18 11:20 기사입력 2021.05.1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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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언론인·문화비평

[톺아보기]‘이건희 컬렉션’, 기증정신을 살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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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유명 미술관을 찾아가 작품을 감상할 때 눈여겨보는 것이 작품명 옆에 적힌 기증자의 이름이었다. 문화 선진국인 구미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아 일찍이 예술품 기부 문화가 발달한 덕분에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예술작품들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향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무척 부러웠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릅 회장 유족 측이 지난달 삼성가에서 2대에 걸쳐 모아온 예술품 1만1023건, 약 2만3000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다고 밝혔으니 이제 우리도 어느 나라 못지 않은 기증 예술품을 갖게 됐다. ‘이건희 컬렉션’의 가치를 따지자면 어림잡아 2조5000억~3조원 정도라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연간 소장품 구입예산이 80억700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두 국립 기관이 300년간 열심히 사 모아야 할 규모라고 하니 ‘세기의 기부’ ‘위대한 유산’이라고 부르는 게 전혀 무리가 아니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귀한 문화재와 예술품을 보존하고 국민들의 예술 향유를 위해 내놓은 삼성가를 ‘한국의 메디치가’로 칭송할 만하다.

지난 2월 23일자 본란에서 삼성가가 내야 할 상속세의 일부분을 소장품으로 물납하고, 국가에선 ‘이건희 컬렉션’ 미술관을 설립해 작품을 전시하는 방안을 제안했었다. 보다 많은 소장자들이 즐겁게 기부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할 수 있는 물납제가 이번에 실현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미술품을 탈세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편견부터 깨야 하겠지만 각종 문화 기부에 대해 세금을 감면해 주는 문화기증제도의 도입은 조세제도를 문화 발전의 도구로 사용해 선순환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시급하다. 어찌됐든 이제 공공의 자산이 된 이 작품들을 어떻게 잘 보존하고 가치를 후손들에게 제대로 물려줄 것인지 그 실천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지자체들은 이런저런 연줄과 이유를 들어가며 이건희 컬렉션 미술관 유치에 적극적이지만 개관과 동시에 ‘세계적인’ 미술관이 되길 원한다면 서울에 세우는 것이 정답이다. 우리가 해외에 여행갔을 때를 생각해 보자. 그 나라의 수도부터 찾는 게 일반적이며, 그곳에 가서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 국립미술관이 아니던가.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도 외국인들이 찾아가기가 어려운데 다른 도시로 간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면 답은 나온다. 서울은 외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시인 만큼 서울 이외의 다른 지역으로 작품이 흩어지는 것은 국가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어떤 미술관이 되어야 하는지는 기증 작품들을 분석해 보면 정답을 알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이건희컬렉션’ 총 1488점은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 238명의 작품 1369점, 외국 근대작가 8명의 작품 119점이다. 제작 연대별로는 1950년대까지가 320점으로 전체 기증품의 22%를 차지한다. 작가 출생연도를 기준으로 하면 근대작가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가의 작품수는 전체 기증품의 58%(860점)를 차지한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삼성가의 미술품 기증을 계기 삼아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이유다.

주요 문화 선진국의 경우 고대-근대-현대 등 시기별로 역할 분담을 하며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을 갖추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컬렉션 면에서 근대, 현대, 당대를 아우르며 어정쩡한 시대적 입장이고 장르도 잡화점식으로 방대하다. 국립현대미술관 등 각 기관에 흩어진 근대 작품들을 모으고 이건희 컬렉션의 근대 작품들을 보태 국립근대미술관을 만들고, 기존 국립현대미술관은 현대와 당대에 집중하도록 하는 식으로 기능을 세분화해서 전문성을 길러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이건희 회장의 기증정신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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