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나 다름 없다" 여성 몸에 커피·잉크 뿌리고 달아나는 男들
혼자 있는 여성에 '액체' 뿌리고 달아나
커피·잉크·점액 등 다양
"상상도 하기 싫다" 여성들 불안감 토로
염산 등 위해물질 섞일 경우 큰 피해
전문가 "정신적 모욕감 주기 위한 범죄일 가능성"
"감시 체계·사회적 안전망 동원해 신속히 검거해야"
경남 창원에서 최근 약 한달 간 여성에게 커피를 뿌리고 달아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혼자 있는 여성을 겨냥한 이른바 '액체 테러'가 기승을 부리면서 여성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액체 테러는 여성의 옷이나 신체 부위에 음료·잉크 같은 용액을 뿌리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문제는 이 같은 행위가 여성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줄 수 있을 뿐더러, 만일 염산 등 위험 물질을 섞은 액체를 뿌릴 경우 심각한 피해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전문가는 이들 액체 테러범이 여성에게 모욕감을 줄 목적으로 범행을 벌였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경남 창원에는 밤늦게 혼자 활동하는 여성을 노린 액체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창원중부경찰서는 지난 23일 "최근 여성을 향해 커피나 음료 등 액체류를 뿌리고 달아나는 사건이 여러 건 발생해서 수사를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2일부터 지난 21일까지 확인된 피해 사례만 총 11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사건은 최근 한 창원 시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피해 사실을 전하면서 알려졌다. 이 시민은 "중앙동 이마트 앞에서 자전거 타고 여성분 몸에 커피 뿌리고 도망간 놈을 찾는다"며 "쫓아가니 달아나던데, 그런 짓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창원 시민은 버스 정류장에 혼자 앉아 있던 중 누군가가 음료수를 머리 위에 붓고 사라졌다며 "놀라 뒤돌아보니 주차장 쪽으로 사라져 알 수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 같은 사건들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판단,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확보해 범인의 동선을 추적하고 있다.
혼자 있는 여성을 표적 삼아 액체 테러를 가하는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해 12월 김해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당시 큰 길가에서 한 남성이 지나가는 여성에게 흰 점액질 액체를 뿌리고 달아난 것이다. 범행을 저지른 남성은 지난달 경찰에 붙잡혔는데, 당시 경찰 조사 결과 남성이 뿌린 액체는 연유·계란 등을 이용해 만든 '가짜 정액'이었다.
지난 2019년 6월에는 인천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여성 행인의 스타킹에 수 차례 검은 잉크를 뿌린 20대 남성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당시 이 남성은 경찰에 "잉크를 뿌린 뒤 여성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취업 준비로 받은 스트레스를 풀려 했었다"고 진술했다.
잇따른 액체 테러 사건에 여성들은 '막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안고 살 수밖에 없게 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같은 범행을 벌인 이들에게는 장난, 혹은 스트레스 해소일지 모르겠으나 당하는 입장에서는 수치심·공포에 시달리게 된다는 지적이다.
뉴스를 통해 액체 테러에 대해 알게 됐다는 여성 회사원 A(28) 씨는 "듣자마자 정말 화가 났다. 실제로 당한다면 굉장히 당혹스러울 것"이라며 "액체 테러를 하는 사람들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이런 일을 벌이는 건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고, 여성들이 그런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20대 회사원 B 씨는 "저 액체에 염산 같은 독극물이라도 들어 있었다면 큰일이 벌어졌을 수 있다. 사실상 테러나 다름없다"며 "더 심각한 범행을 저지르는 이들이 나타나기 전에 액체 테러범들에 강경한 대응을 했으면 좋겠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음료·점액·잉크 등 액체들이 신체에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해도, 액체 테러는 심리적으로 위협을 줄 수 있다. 만일 범인이 액체에 염산 등 치명적인 위해 물질을 섞어 뿌릴 경우 큰 신체적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액체 테러를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큰 신체적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셈이다.
실제 국내에서도 드물게 염산 테러가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서울 도봉구 한 식당에서 70대 남성이 30대 여성 종업원을 향해 염산이 섞인 액체를 뿌려, 종업원 1명과 손님 1명이 각각 팔과 다리에 화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문가는 액체 테러를 벌이는 범인들의 주요 동기가 피해자에게 모욕감을 주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남성이 여성에게 잉크나 음료 등 액체를 뿌리는 범죄는 이전에도 종종 벌어졌다"라며 "고체가 아닌 상해 위험이 없는 액체를 택한 것으로 봐서는 피해를 주기 보다는 정신적 모욕감을 주기 위한 범죄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다만 액체 테러범들에게 강한 형사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은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오 교수는 "이전에 여성이 착용한 특정 의복에 액체를 끼얹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재물 손괴 혐의로 입건된 경우가 있었지만,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액체 테러범을) 폭행 혐의 이상으로 적용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일각에서 요구하는 강한 처벌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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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액체 테러가 전국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범죄가 아닌 이상 별다른 예방 조치를 강구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CCTV, 블랙박스 등 기존 감시 체계와 사회적 안전망을 동원, 범인을 재빨리 추적해 검거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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