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 청렴함 기리는 '순천 팔마비'도 보물 지정
국보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은 '영천 거조사 영산전'으로 이름 바뀌어

공주 갑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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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갑사 대웅전'과 '의성 대곡사 범종루', '순천 팔마비'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됐다. 문화재청은 세 지방 유형문화재를 보물로 지정했다고 23일 전했다.


공주 갑사 대웅전은 정유재란 뒤 갑사에서 가장 먼저 재건된 건축물이다.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으나 대체로 원형이 유지됐다고 평가된다. 건립 시기는 17세기 초로 여겨진다. 내부에 있는 '갑사소조삼세불(보물 제2076호)'이 1617년에 제작되고, '갑사사적비'가 1659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공주 갑사 대웅전

공주 갑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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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정면 다섯 칸, 옆면 세 칸의 맞배집이다. 정면이 다섯 칸이면서 맞배지붕을 얹은 사례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기둥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됐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목구조가 꼽힌다. 휘어진 재료를 최소한으로 가공해 사용해서다. 문화재청 측은 "당시 경제적 변화로 새롭게 등장한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17세기에 지어진 다포계 맞배집의 전형적인 형식을 공유하면서 조선 후기 건축 경향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라고 평했다.


의성 대곡사 범종루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전소돼 1644∼1683년에 중창됐다고 전해진다. 정면 세 칸, 옆면 세 칸의 2층 누각 건물이라 17세기 전반에 건립됐다고 추정된다. 특징으로는 자연 곡선이 살아있는 누각 하부 기둥이 자주 언급된다. 문화재청 측은 "목재수급의 어려움, 조선 후기 자연주의 사상과 맞물려 살림집, 사찰 등에서 많이 사용됐다"라고 설명했다.

의성 대곡사 범종루

의성 대곡사 범종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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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의 대들보는 보기 드물게 같은 크기의 부재가 2단으로 걸려 있다. 상부 보 부재가 대들보 역할을 하고, 하부 부보재가 보받침 부재의 역할을 한다. 기둥 사이에 포를 둔 다포계 양식이나 중앙 칸에 화반을 사용한 점 등은 주로 주심포와 익공양식에서 많이 쓰이는 형식이다. 문화재청 측은 "다포, 주심포, 익공의 공포양식이 고루 나타나는 절충적인 건물"이라며 "의성 지역의 불교 사찰이 부흥하기 시작한 17세기의 양식적 변화를 잘 간직한다"라고 평했다.


순천 팔마비는 충렬왕 7년(1281) 뒤에 승평부사(昇平府使) 최석(崔碩)의 청렴함을 기리기 위해 승평부(지금의 순천)에 세운 비석이다. 고려사 열전(列傳)에 따르면 승평부에서는 수령이 바뀌면 말 여덟 필을 기증하는 관례가 있었다. 최석은 비서랑의 관직을 받아 개성으로 떠난 뒤 승평부에서 기증한 말과 자기 말이 승평부에 있을 때 낳은 망아지를 함께 돌려보냈다. 그 뒤 승평부에서는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수령에게 말을 기증하는 폐단이 사라졌다. 읍민들은 최석의 청렴한 공덕을 기리기 위해 팔마비를 세웠다.


순천 팔마비

순천 팔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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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처음 건립된 비석은 1300년대 초반에 쓰러졌다가 다시 세워졌다. 정유재란 때 크게 훼손됐는데, 1616년 부사로 부임해 온 이수광에 의해 재건됐다. 여기에 쓰인 '八馬碑(팔마비)' 세 글자는 진사 원진해의 글씨다. 뒷면에 새긴 글은 이수광이 짓고, 동지사(同知事) 김현성이 글씨를 썼다. 옥개석(지붕돌)·비신(碑身)·비석 받침돌을 갖춘 조선의 일반적인 비와 달리 비신 위에 옥개석이 없고, 비석 받침돌에 연화문(蓮華文)이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 측은 "순천 지역을 대표하는 중요 유물"이라며 "팔마비의 주인공인 최석을 청렴한 지방관의 표상으로 삼아 현재까지 이어온다는 점에서 역사·예술·학술 가치가 충분하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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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거조사 영산전

영천 거조사 영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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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국보 제14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의 명칭을 '영천 거조사 영산전'으로 변경했다. '거조암'은 1912년 은해사(銀海寺)의 말사(末寺)가 되면서 바뀐 이름이다. 원래 명칭은 거조사(居祖寺)였다. 1478년 서거정이 펴낸 '동문선' 등 각종 문헌에 이같이 기록돼 있다. 문화재청 측은 "2007년 조계종에 거조사로 사명을 인정받았으며, 2003~2005년 발굴조사에서 상당히 넓은 사역에 불전과 탑 등이 확인되는 등 사찰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라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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