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보편적 현금복지론, 아테네 선동정치의 환생인가
AD
원본보기 아이콘


연초부터 여권에서 심심찮게 제기된 4차 재난지원금의 올봄 지급 논의가 ‘선(先) 선별, 후(後) 보편’으로 일단 정리된 듯하다. 한편 여권 잠룡들 간 기본소득 공방은 한창 진행 중이나, 나랏돈 퍼주지 못해 안달인 점에서는 다들 오십보백보다. 재보선·대선 전략이란 말도 나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선별복지의 정교한 설계와 적시 이행은 중요하다. 그러나 보편복지는 전혀 다른 얘기다. 우리 경제가 전국민 현금살포의 엄청난 비효율을 감내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일까.

세계은행의 카르멘 라인하트 수석경제학자에게 코로나19는 ‘소리 없는 위기’다. 뱅크런이나 시장붕괴가 요란스레 동반되진 않았지만, 각종 봉쇄 조치로 산출이 급감하고 실업·빈곤과 불평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통화 및 재정 팽창은 물론 대출 상환유예 등 느슨한 감독까지 총동원했다. 하지만 조만간 백신 보급에 따라 정책이 정상화되면 "수많은 기업과 가계가 유동성부족 아닌 지급능력부족에 직면"할 것이다. 이런 경우 특히 거액 민간채무가 누적된 여건에서는 금융위기나 국가채무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이 라인하트의 경고다.


이런 엄중한 마당에 ‘정부가 국민 대신 지는 빚’이 국가채무라는 그럴싸한 말까지 들린다. 물론 궤변이다. 정부가 오늘 빚을 지면 결국 누가 갚나. 오늘과 내일의 국민이 두고두고 갚는다. 더욱이 문 정부가 그 알량한 ‘이념정치’ 말고 ‘경제정책’을 제대로 썼다면 국민이 지금처럼 큰 빚을 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빚을 대신 지겠다고 정부가 나설만한 핑곗거리조차 애초부터 없었을 것이다. 지난 수년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턱없는 정치구호를 지금껏 움켜쥐고 있지만 않았어도, 연전연패의 부동산정치로 집값을 하늘 끝까지 올려놓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보편적 현금복지가 성장 위축과 불평등 심화를 가져온다는 실증적 결과들은 이미 나와 있다. 그런데도 ‘기본’ 시리즈로 유명한 모 정치인은 "증세 없이 기본소득(이) 가능"하다며 "불가능한 걸 가능케 하는 게 정치"라고 강변한다. 정치라는 희한한 요술봉 앞에서는 경제분석도 한낱 무용지물이 되나 보다. 그런 동안 현금살포 정치에 사람들의 인성도, 경제하려는 의지도 속절없이 무너져내린다.


우리 정치권의 이런 딱한 풍경은 기원전 5세기 말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연상케 한다. 문헌에 따르면 당대의 뛰어난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가 기원전 429년 병사한 후 수십 년간 아테네에는 이성 아닌 감성과 편견에 호소하는 선동정치인들이 두드러지게 출몰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언변(궤변)과 대중의 반엘리트 정서를 자극하는 편가르기(포퓰리즘)가 이들의 필살기였다. 그 옛날의 아테네 선동정치가 21세기 우리나라에 환생한 걸까.


정치판은 옳고 그른 생각들이 뒤섞여 경쟁하는 "생각의 장터(marketplace of ideas)"다. 이 장터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심판자는 오롯이 국민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진실이 거짓과 충돌할 때 사람들은 진실을 더 명확히 인식하고 더 생생하게 느낀다"고 썼다. 밀의 이 말씀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소중한 밀알이길 염원한다.

AD

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